판서 조원기 대감
판서 조원기 대감
  • 소병년
  • 승인 2007.08.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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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연산군~중종) 판서벼슬을 지낸 조원기 대감의 이야기이다.

늦은 나이(40세)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조원기는 연산군의 史草열람을 반대하다 벼슬에서 쫓겨나 강원도 횡성에서 귀양을 살았다.

중종반정 이후 재차 조정에 나간 조원기는 경원부사로 있으면서 선치수령으로 이름이 높았고, 재상의 반열에 오른 후에도 비바람 피할정도의 초가에서 살면서도,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 모든 백성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에게는 생질 홍언필(후일 영의정)과 조카 조광조(후일 영의정 추증)가 있었는데 어느해 홍언필이 좌천되어 좋지 않은 자리로 나가게 되자 벼슬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네가 탐탁지 않은 한직으로 옮긴 것은 네게는 실로 좋은 일이다. 좋다는 자리에 오래 있으면 사람들의 원망이 쌓이게 되니 어찌 그것이 좋겠느냐? 호랑이를 탔다가 내리기를 잘하는 것이 예로부터 어렵다 하였거늘 항차 한가하고 아담한 직책이야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

또한 조카 조광조에게도 경계하며 살아가기를 숙부로서 당부하길 “세상일에는 기쁜 일에도 항시 근심이 따르는 법이다. 좋은 벼슬에 있더라도 늘 행동을 삼가고 위태한 말과 교만으로 제 몸을 해치고 실패할 것을 경계하여라. 마땅히 재주는 숨기고 모난 것은 둥글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가 닥칠 것이니 매사에 신중하고 경솔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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