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네덜란드 간척 현주소(1)
③ 네덜란드 간척 현주소(1)
  • 김강민기자
  • 승인 2007.09.05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인체의 70%를 이루는 물은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물질이다. 인간은 유사 이래로 물을 구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문화의 발상지가 모두 큰 강 유역인 것만 봐도 이는 명확해진다. 그러나 이처럼 소중한 물이 때로는 홍수나 해수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에 인간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적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위해 아드리아해의 개펄(潟湖)에 나무막대를 수없이 박아 세운 도시고, 전체 면적이 4만㎢인 네덜란드는 국토의 40%가 제방을 쌓고 풍차와 펌프로 물을 빼내 얻은 간척지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은 세상을 창조했으나 네덜란드인은 육지를 만들었다”는 말이 따라다니듯이 네덜란드는 단어 자체가 ‘낮은 땅’을 뜻한다.
국토의 40%가 해수면보다 낮고, 또 절반 이상이 해발 5m가 되지 않는다. 제일 높은 곳이라는 벨기에와의 국경지역인 륌뷔르흐주에 있는 발세르베르흐산의 높이도 해발 321m에 불과하며 해수면보다 6.5m나 낮은 곳도 허다하다.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처럼 많은 도시의 이름이 ‘담(-dam)’으로 끝나는 것도 강에 댐이나 제방을 쌓고 그 위에 거주지를 만들어 도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은 암스텔 강, 로테르담은 로테 강, 에담은 에(Ee) 강에 댐을 쌓아 만든 도시다.
이처럼 전 국토의 절반 가량이 해수면보다 낮고 천연자원도 부족한 네델란드는 지난 19세기 이전부터 간척사업에 매진, 현재는 세계 3위의 농업수출국이며 세계 8위의 무역국가로 발돋움했다.
생존을 위해 간척사업을 시작했던 네델란드와는 비록 시작 배경은 다르지만 간척사업을 통해 국토 확장과 국가발전을 이룬 네델란드의 성공사례를 통해 전북 도민의 염원인 새만금지역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본다.
인구밀도는 높고 땅이 좁은 네덜란드는 북해 쪽으로 땅을 넓히기 위해 지난 800년간 사투를 벌여왔다. 이들이 배수용 관개수로를 처음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1200년대이며 네델란드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풍차는 14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이때까지만해도 네델란드의 간척사업은 주로 로테르담 남쪽의 제이란드(Zeeland)가 있는 델타 지역에 집중됐으나 1421년 11월18일과 19일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며 10개의 도시가 물에 잠기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제방은 해안도시의 필수시설이 됐다.
방조제를 쌓은 다음 풍차를 돌려 저지대의 물을 퍼내는 네델란드 간척사업은 이렇듯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부터 시작됐다.
네델란드인들은 이렇게 얻은 간척지를 폴더(polder)라 불렀다. 처음에는 필요한 곳에만 산발적으로 풍차를 세웠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배수능력을 높이기 위해 나란히 세우게 됐고 이렇게 세워진 풍차는 한때 1만여개가 넘을 정도로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현재는 약 950개 정도가 남아있다.
현재까지도 풍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당시 해수면보다 낮은 레크(Lek) 강의 물을 퍼올리기 위해 세운 로테르담 근교의 킨데르다이크 일대로 이곳에 도착하면 개울을 따라 줄지어선 19개 풍차의 장관을 확인할 수 있다.
또 17세기 초에 조성된 7천200ha의 벰스터(Beemster) 폴더는 농사짓기에 적합하도록 길이 930m 너비 185m로 구획됐고 당시 건설된 도로, 수로, 제방은 원형 그대로 지금껏 남아 있다. 벰스터 폴더에는 깊게 뿌리를 내리는 갈대를 심어 개펄의 물기를 빨아들이게 하다가 감자, 양파 등을 번갈아 심어 땅을 굳혀 계속 목초지로 만드는 방법으로 간척지를 개발해왔으며 지금은 수십 년씩 자란 아름드리 나무로 이루어진 숲과 물길 역할을 하는 운하, 젖소가 풀을 뜯는 넓은 목초지가 그림 같은 풍광을 선사하고 있다.
19세기에 접어들자 풍차 대신 증기기관이 간척사업에 투입됐다.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바 있는 바우다(Wouda) 펌프장은 증기기관을 이용한 양수시설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9세기까지 이뤄진 이 같은 네델란드의 간척사업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진행된 델타(Delta)사업과 쥬다지(zuiderzee)사업에서 절정을 이뤘다.
1930년 개발을 시작한 2만ha에 달하는 위링거미어(1지구)를 시작으로 4만8천ha 규모인 노르두스트(2지구), 5만4천ha인 우스텔릭(3지구), 4만3천ha인 자위델릭(4지구), 마지막으로 방조제 공사를 마친 지난 1980년 이후 사회적 수요에 따라 개발을 하겠다고 담수호 상태로 남아있는 6만ha 규모의 마커와드(5지구) 등 네델란드의 간척지는 모두 5지구로 구성되있다.
지난 70여년동안 단계적으로 개발된 이 곳 5개 지구는 그 규모만도 새만금의 9배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간척면적만도 16만5천ha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사업을 진행해온 네델란드인들의 저력도 놀랍지만 농지 중심의 1·2지구(농지 87%, 주거지 1%, 산림과 도로 13%)와 인구흡수 및 자연환경조성을 위해 주거지 비율과 산림비중을 높인 3·4지구(농지규모 3지구 75%·4지구 50%, 주거지 3지구 8%·4지구 25%, 산림 4지구 18%) 등 사회적 수요에 맞춘 탄력적인 토지용도 운영으로 실패를 최소화한 것은 새만금지구를 둘러싸고 각종 논의가 이뤄지는 우리 현실에 비춰볼때 가장 중요한 발전모델로 다가온다.
제방을 쌓고 또 쌓아 국토를 늘리고 다듬으면서 100년이 멀다하고 국토의 모양을 변화시켜온 네델란드. 수많은 운하와 이를 잇는 1천여개의 다리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수도 암스테르담이 있는 네델란드. 간척사업 후 바닷물이 사라지면서 생물의 집단폐사 및 수질 악화 문제가 도래하자 즉시 역(逆) 간척 사업을 벌여 자연을 되살리고 그 중 50%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등 자연환경보존에도 앞장선 네델란드. 국가 발전과 환경보전 등 어느 한쪽에도 부족함이 없는 선진 간척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네델란드의 간척지를 둘러보며 새만금의 향후 발전방향과 보전방법 등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해본다.
특히 새만금간척사업은 전북의 미래인 동시에 한국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으로 세계적인 간척사업 선진국인 네델란드를 발전모델로 삼아 새만금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도모하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