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양성의 인정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문화 다양성의 인정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 박규선
  • 승인 2007.09.11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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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배달의 민족’이나 ‘단일민족’의 자긍심에 대해 우리는 가르쳐 왔고 또 배웠다. 역사가 온통 침략사와 다름없는 시절에 단일민족은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어떤 이민족의 피도 섞이지 않았다는 순혈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과 자긍심은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을 존재하게 한 힘인지도 모른다.

몇 년 전인가? 크레파스의 살색 때문에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살색은 어떤 색을 말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부색도 자세히 보면 각각 다르다. 백인처럼 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흑인과 비슷한 사람도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색이 공존하는 스펙트럼을 어떻게 단순히 어느 한 가지 색으로 못 박아 살색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분히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유엔(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다민족주의 성격을 이해하고 한국이 실제와는 다른 단일민족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은 적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올 8월 말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100명중 2명이 외국인 셈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는 지금 이념전쟁에서 벗어나 민족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말리아 내전이나 코소보전쟁, 체첸사태 등은 모두 민족 간의 갈등이 부른 재앙이다. 중국의 경우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를 막기 위한 조치들을 이중삼중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민족간의 전쟁은 사실 맹목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것에서 보이듯 뚜렷한 구별도 없는 민족이라는 특성으로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이야기 했는데, 국제 결혼가정은 농촌으로 갈수록 그 비율이 높다. 우리 농촌 총각과 동남아 등 외국인 여성들과의 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이 날로 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전북만 해도 현재 2천648가구의 다문화 가정이 있고, 그들 자녀 1천80명이 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아직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머지않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이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될 것이다.

다년간 우리 문화를 접하고 온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농촌의 외국인 여성들은 비교적 우리말도 서툴고 우리 문화도 낯설어 한다. 그러니 그들 자녀는 교육 소외자와 다를 바 없다. 교육 소외자는 교육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사랑방’ 정도로는 안 되고, 보다 획기적인 대책들이 필요하다. 이들만을 위한 ‘애듀케어’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학교가 부모의 역할까지 해주지 않으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성장 결핍을 겪을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 전라북도교육청은 이 문제에 대해 정책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타시도 교육청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교육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시군에서 이들 가정을 보다 세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외국인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가르쳐서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경우 이해할 수 있도록 남편들 교육도 해나가야 한다. 무조건 우리나라에 왔으니 우리 것을 따르라고 하면 더 어려워 질 수 있다. 생각해라, 그들이 현재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가?

세계는 지금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우리도 이제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비법은 간단하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이다. 민족은 문화의 실체를 담보해내는 거푸집이다. 그 거푸집을 걷어내고 문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문화에 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준의 우열은 없다. 그러니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차별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기에 그 다양성들을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제 심정적인 단일민족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항복하고 조선에 남은 왜군만 1만 명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만 거주하며 유지돼온 독립지구가 없는 것을 보면 우리가 믿고 있는 단일민족 역시 허구가 아닐 수 없다. 시대에 맞게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배려하는 것이 선진국민의 의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북도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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