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에서 만난 친구들
알프스 산에서 만난 친구들
  • 이소애
  • 승인 2007.10.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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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철새들이 이동을 할 때이다. 철새들은 태어날 때부터 두뇌에 이동의 경로가 입력되었을 게다. 태풍이나 돌풍에 휘말려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찾아와야 될 철새들은 꼭 찾아온다.

찌르레기는 태양의 위치를 나침반으로 삼고 이동을 한다고 한다. 밤에 이동하는 지빠귀나 멧새는 별자리를 보고 이동하고, 해안이나 산맥, 평원 등 땅 위의 물체를 표지판으로 삼기도 한다.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보노라면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것 같다. 오른쪽과 왼쪽, 위아래로 질서 있게 비행하는 광경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잘 훈련된 곡예사들이 연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무리 씩 몸을 뒤집는 가창오리 떼의 비행은 거대한 카드 섹션을 하는 듯하다.

철새들이 먹을거리를 찾아서 이동을 하듯이 나도 영혼에 허기를 느낄 때면 성지순례를 떠난다. 성지순례 중에 기도를 하면서 성인들의 거룩한 생애를 더듬어 보면서 자아 발견을 해본다. 또 순례자들의 경건하고 심오한 믿음의 모습에서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정리하게 된다.

비통은 몹시 슬프고 가슴이 아플 때를 말한다. 비통은 무자비한 파도와 같아서 한 순간 영혼과 정신과 육체를 해체하기도 한다. 목이 메이고 숨이 막히고 한숨이 나오고 속이 텅 빈 것 같고, 몸에 힘이 없는 증조는 비통이 다가 온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정신적인 아픔은 자괴감으로 몸부림치기도 한다. 번뜩이는 울분은 영혼을 멍들게 한다. 이럴 때의 성지순례는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루체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스위스에서의 일이다. 궤도 열차를 타고 리기산을 올랐다. 한 눈에 들어오는 알프스산의 풍경. 멀리 보이는 하이얀 잔설이 구름처럼 하늘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가끔 목에 방울을 단 양 떼들의 방울소리가 바람에 리듬을 타고 들려온다. 산언덕을 오르락거리며 풀을 뜯는 양 떼들에게서 나는 문득 목에 걸린 방울을 떼어내고 싶었다. 서로에게 구속되어 있는 무리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허지만 알프스산에 울려퍼지는 방울소리가 초록빛 언덕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4 달러가 조금 넘는 카프치노 한 잔을 마시며 나의 눈에 사로잡힌 꽃이 있었다. 민들레였다! 나의 친구였다.

민들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동안 찻잔은 어느새 비워져 있었다. 다시 커피를 시켰다. 좀이 쑤셔 앉아만 있을 수 없어서 초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키 작은 노오란 민들레였다. 바깥쪽 꽃싸개가 아래로 축 쳐져 있는 모양새가 틀림없는 서양 민들레다. 늦둥이 인가보다. 곧 눈이 내릴테니까. 꽃이 시들면 꽃가루받이를 하겠지. 알프스산의 민들레도 하얀 갓털은 바람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겠지. 알프스산의 바람에 살아 남기위해 키 작은 민들레의 처세술에서 나 또한 사는 방법을 터득 했다. 리기산 중턱에 있는 레지나 경당에 들러 사랑하올 성모 마리아 노래를 불렀다. 나는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루체른 호수의 청정한 물에 나의 마음을 비추어 볼까. 맑은 물에는 작은 흠집도 투명하게 보일 테니까. 세속에서 찌든 때를 마로니에 나무 그늘에 앉아서 하나 씩 꺼내어 본다.

이소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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