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운봉가야사와 전북의 역사적 위상
장수·운봉가야사와 전북의 역사적 위상
  • 정영신 前 전북소설가협회 회장
  • 승인 2024.03.2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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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목련꽃잎이 춘풍에 흩날린다. 제비꽃, 수선화, 온갖 꽃들이 그 고운 꽃망울을 터트리니 신윤복의 ‘답청’ 그림처럼 모두들 봄나들이를 가고 있다. 햇살 좋은 남녘부터 지자체별로 벚꽃축제가 이어지고 지자체장들은 그 지역만의 특별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우리 전북은 특별히 왕들과 관련된 역사적인 유적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전주는 후백제 견훤왕의 왕도였으며 전주 이씨 시조 이한의 21대손인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건국했다. 1899년 고종은 ‘조선왕조의 창업을 경축한다’며 건지산 왕자봉 아래에 조경단을 세우고 해마다 제를 지냈으며, 완산주를 도읍지로 택한 견훤왕의 왕궁터 등 후백제의 흔적들도 곳곳에 남아 있다. 또한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태조 이성계의 친필인 ‘환희담(歡喜潭)’과 ‘삼청동(三淸洞)’이라는 세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태조 왕건은 이 상이암에서 대업을 꿈꾸며 백일기도를 올리고 목욕재계를 하다가 부처의 영험(靈驗)을 얻으니 기쁘다며 바위에 ‘환희담(歡喜潭)’이라 새긴 뒤 고려를 건국했다. 또한 태조 이성계도 1380년 황산대첩에서 대승한 뒤 돌아가다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고려 태조 왕건의 서운(瑞運)을 받기 위해 이 상이암에서 기도를 올리고 ‘삼청동(三淸洞)’이라는 세글자를 바위에 새기자 하늘에서 무지개가 뜨더니 공중에서 세 번 “이 공이 성수만세를 누린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하늘과 땅의 조력으로 조선왕조를 건국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왕들의 성스러운 기운이 깃든 성수산길은 ‘왕의 숲’이라 불리며 지역주민들과 산악인들의 힐링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 진안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도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하다가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왕권을 상징하는 금척도를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역시 대운을 꿈꾸는 이들이 특별히 많이 찾고 있는 명소이다.

우리 도민들은 이처럼 전북은 주로 후백제 견훤왕과 고려 태조 왕건, 조선 왕조 이성계의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들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전북은 고고학자인 곽장근 교수의 30년이 넘는 연구 성과로 장수와 남원 운봉이 가야왕국이었다는 것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며 전 세계에 알렸다. 최근 곽교수는 전북역사문화연구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신선의 땅, 운봉고원 가야이야기’. ‘백두대간 서쪽 장수가야이야기’. ‘전북동부가야, 철이다’, ‘봉화왕국 장수가야이야기’ 등의 전북가야사 강연을 통해 도민들에게 우리 전북의 위상을 새삼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돌이켜보니 어린시절 어머니께서는 5일장에 가셔서 칼과 제기(祭器)는 꼭 남원산을 사셨고, 장수 곱돌솥을 구하셨다. 장수의 높은 산에는 할석으로 불리는 부싯돌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장수 대적골 등의 골짜기 주변에는 숯가마와 쇠똥으로 불리는 제련과정의 불순물 덩어리인 슬래그가 흔했다. 또한 친구들과 진달래꽃을 따 먹으며 놀던 화산의 고성산에는 산등성이를 올라서면서부터 수많은 깬돌 조각들과 널따란 화강편마암편들이 골짜기를 따라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가야와 백제의 국경을 따라 축성된 가야산성의 증거물이다. 니켈 함유량이 풍부한 최상급의 철광석 산지를 보유한 장수가야와 운봉가야는 이 철생산과 가공, 철제품의 국제교역을 통해 한때 백제와 신라를 제압할 정도의 최강의 국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장수가야는 봉화의 왕국이다. 곽교수의 열정적인 발굴조사 결과로 찾아낸 전북가야 내 8개의 봉화로가 왕궁터로 추정되는 장수 장계 탑동마을 삼봉산 봉화대로 모아지고 있다. 전북가야의 봉화들은 장수가야가 운봉가야의 철산지를 지키기 위해 513년부터 3년간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이 봉화의 존재 역시도 장수가야의 철생산과 유통을 통한 최강을 국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반증이 된다. 이 전북가야 봉화로와 봉화대를 복원하여 LED 횃불로 쏘아 올린다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적인 격에 맞는 글로벌한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벚꽃잎이 날린다. 연초록 수양버들꽃잎도 바람에 날린다. 4월 5일과 12일에는 가야문화연대와 후백제시민연대에서 주관하는 ‘장수가야 고총답사’와 ‘전북가야 산성답사’ 행사가 있다. 이러한 가야역사 관련 시민참여 답사와 강연 등을 통해 도민들의 전북가야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우리 전북의 위상이 한층 더 글로벌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정영신<前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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