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破墓)》,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보다
영화 《파묘(破墓)》,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보다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승인 2024.03.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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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2일에 개봉된 영화 《파묘(破墓)》는 오컬트 영화이다. ‘오컬트’란 ‘숨겨진 또는 비밀스러운’의 의미를 지닌 ‘Occultus’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오컬트 영화는 초자연적인 현상, 미스터리, 악마, 스릴러, 귀신 등을 소재로 한 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이 영화는 개봉 사흘 만에 누적 관객수 145만 명을 넘더니 개봉 32일차에는 10,209,064명에 이르러 또 우리나라 영화사에 빛나는 ‘천만관객 영화‘로 등극하였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이렇게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을까. 어떤 분은 장재현 감독이 2015년 신부들의 퇴마 의식을 다룬 《검은 사제들》과 2019년 신흥종교를 둘러싼 미스터리 영화 《사바하》에 이어 오컬트 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고 극찬하였다. 또 어떤 분은 이보다 앞서 개봉된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과 다른 정치적 색깔이 분명하였다고 하였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보수 우파의 색깔이 짙게 스며 있고, 《파묘(破墓)》는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진보 좌파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영화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하는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인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 영화의 등장인물과 장소 등의 이름이 일제강점기 시대를 연상하게 한다. 최민식이 연기한 풍수사 상덕, 무당 화림 역의 김고은, 이도현이 연기한 봉길은 모두 독립운동가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여기에다 묘가 위치한 ‘보국사’도 나라를 지키는 절이고, 주지스님의 법명 ‘원봉’ 은 항일 독립운동가 김원봉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는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무당 화림과 보조인 봉길(이도현)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받는 부유한 가정의 의뢰를 받아 미국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울음이 그치지 않는 아기를 보게 된다. 화림은 조상 누군가의 잘못 쓴 묘밧람 탓이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빌미가 되어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유해진, 무당 화림은 산 정상에 위치한 어느 묘에 대한 파묘(破墓)에 가담하면서 끔찍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무당 화림은 굿을 하다가 억센 오니(귀신)의 기세에 눌려 깃발을 떨어뜨리고, 상덕은 방향을 잘못 잡은 공사 책임자에게 화를 내다가 수술 부위가 터져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오니를 물리친다. 그 묘의 주인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박지용(한일합방의 주역 이지용의 이름을 씀)의 조부임이 드러난다. 그 조부가 ‘여우 음양사’에 속아 악지(惡地) 중의 악지(惡地)에 묻힌 데다가 일본 전국시대의 유명한 무장까지 그 시신 바로 밑에 첩장(疊葬) 되어 있었으니 조부의 한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조부의 덕에 박지용과 가족(고모)은 아직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으면서도 조부가 친일파라는 사실만은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묘를 파헤쳐 관도 열어보지도 않은 채 화장해 버릴 셈이었다. 관을 열었다가 친일 행적이 드러나거나 법적 절차에 따라 신고하면 조부의 이름이 세상이 알려질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여우 음양사는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은 장본인인데 이 영화에서는 박지용 조부의 시신을 쇠말뚝 위장막으로 쓴 사실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김상덕(최민식), 이화림(김고은), 고영근(유해진), 윤봉길(이도현)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음을 보노라면 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스토리 전개를 쉽게 눈치채게 한다.

이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필자에게는 이보다 앞서 관람했던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오버랩되었다. 이 영화가 처음부터 《건국전쟁》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개봉 시점이 비슷해서 서로 연결된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에서 이들 영화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하면서 서로 다른 대응을 요구했다. 필자의 칼럼 〈영화 《건국전쟁》에 ‘진짜 이승만’이 보였을까〉(전북도민일보, 2024-03-06)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실에 대해서만은 좌우 진영의 사상적 경향이나 이해관계와는 관련이 없어야 한다. 진실은 진실 자체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재현 감독은 ‘오컬트’ 장르를 통해서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을 터인데, 필자는 기법상의 예술성까지 충분히 잘 파악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다만,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과거사가 아프게 다가와서 마음이 무거웠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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