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라일락’
- 이선 시인
그날도 라일락이 피었지
움푹 팬 눈으로 문을 나섰을 때
꽃은 지고 없었지
다시 핀 라일락은 이제
다시 핀 라일락이 아니다
침몰하는 배가 담장에 걸려 있다
술렁이던 창가, 돌아오지 못한
꽃숭오리 숨결들이
돌아온 사월의 담벼락 저만치 아픈
몸을 뒤척이며 꽃잎들이 잠꼬대를 한다
나도 깨어날 수 없어
라일락이 피었다고
라일락이 피었다고
<해설>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날입니다. “가만있으라”라는 어른의 말을 믿었던 304명의 순진무구한 꽃다운 청춘이 바다의 차가운 어둠 속으로 잠겨갔고, 이들을 떠나보낸 슬픔과 무기력한 나라에 대한 절망감이 밀려옵니다.
“다시 핀 라일락은 이제/ 다시 핀 라일락이 아닌” 이유는 그날부터 가슴에 자리 잡은 멍 같은 슬픔 때문입니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가 담장에 걸려 있으며” “술렁이던 창가, 돌아오지 못한” 젊은이들 때문에 세상은 꽃이 없는 암담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꽃숭오리 숨결들이 돌아온 사월의 담벼락 저만치/ 꽃잎들이 아픈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네요.
세월호 참사 10주기 악몽의 그날이 또 돌아옵니다. 우리는 악몽에서 깨어날 수 없는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일락이 피었다고, 라일락이 피었다고” 아무리 외쳐도 듣는 이가 없으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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