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예산’ 줄이며 ‘사교육비’ 막을 수 있을까?
‘공교육 예산’ 줄이며 ‘사교육비’ 막을 수 있을까?
  • 천호성 전주교육대학교 교수/전북미래교육연구소장
  • 승인 2024.03.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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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성 전주교대 교수<br>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14일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교생의 연간 사교육비 총액이 27조원을 넘어섰다. 전년보다 4.5%(1조2천억원) 증가하여 역대 최대 금액을 기록한 것이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 비율과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시간도 모두 증가하였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출생률을 보이는 원인이기도 하며, 학력·학벌 경쟁을 심화시키고, 가계의 소비 여력을 줄여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사회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 수는 줄어들어도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사교육비 총액은 갈수록 더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정부는 공교육 예산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소득과 지역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도 아주 큰 것으로 나타났다. 월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은 월 67만원, ‘300만원 미만’ 가구는 18만원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학생 1인당 월 62만8천원인 반면 전북은 30만2천원으로 2배 넘게 차이가 났다. 지역별, 계층별 사교육비의 양극화는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 조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서열화된 대학입시 경쟁구조와 학벌 지상주의 등을 들고 있다. 이 중 학부모의 교육열이나 학벌지상주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것들이어서 어떤 정부도 손을 대기 쉽지 않다. 필자는 입시경쟁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대입제도를 개선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사교육 감소와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다 현실성 있고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교육정책들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어 상당히 우려스럽다. 예를 들어 학력진단 강화라는 미명 하에 전수평가를 추진하는 것, 전 정부에서 폐지하기로 했던 자율형사립고 및 외국어고를 존치하기로 한 결정 등은 초등학교 단계부터 사교육의 수요를 자극하고 있으며, 킬러문항 배제, 무전공 확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계속되는 설익은 정책 발표는 대학입시 혼란을 부추겨 사교육 증가를 이끌고 있다.

또한 대통령 취임 후 발표한 ‘2022~2026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현행 내국세 연동 방식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의 개편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공교육에 투입하는 예산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유보통합을 위한 예산이나 고교무상교육 예산 등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교육 예산의 감소는 공교육의 질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 분명하다.

당장 지난해부터 정부의 부정확한 세수 추계에 따른 역대급 세수 펑크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10조 5천억원 이상 감소했으며, 올해도 전년 대비 약 7조원 가까이 감소 편성되면서 학교운영비, 학교환경개선 등 교육사업의 규모가 바로 축소되었다. 이를 보더라도 공교육 예산의 감축이 교육현장에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학생 수가 줄어도 우수한 교육 여건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수와 교원 수는 줄일 수 없다.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교육재정 규모를 축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교육환경 개선과 교육복지에 투자하여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학급당 학생 수, 교사당 학생 수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에도 학교가 문을 닫지 않고 정상 수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게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천호성<전주교육대학교 교수/전북미래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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