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60> 차의 길 63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60> 차의 길 63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4.03.1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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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의 '삼연집'

 

  술은 연꽃 핀 정자가 좋고

  차 솥은 대숲 속에 건다네.

  아득한 아포(鵝浦)에 비 내리고

  내 마음 하늘가에 있다네.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백월사시사(白月四時詞)」이다. 술과 차를 마시는 장소를 달리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의 운치(韻致)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이다. 그는 운치만이 아니라 좋은 차 맛을 내기 위해 좋은 물에 대해 평을 하기도 한다. 그가 오대산을 유람하면서 쓴 「오대산기(五臺山記)」에는 물에 관한 내용이 있다.

일부를 보면 금몽암에 도착해서 샘물을 마셨는데 “샘물이 달고 부드러워 마시기 좋았으며, 그 물맛은 상품이라 육우로 하여금 차를 달이게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한다. 우리의 물맛이 차를 달이기에 중국의 물에 못지않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그가 여기 물은 “옥계수이며 서쪽이 우통수이고 동쪽이 청계수이고 북쪽이 감로수이며 남쪽이 총명수”라고 칭한다. 그의 시에 가끔 육우의 『다경』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다경』을 읽고 그 내용을 실제로 적용해 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창흡의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벼슬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명으로 응시하여 1673년(현종14) 진사시에 합격하지만 이후 과장에는 발을 끊었다. 동료들과 글을 읽으며 산수를 즐겼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영평(永平: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에 은거하였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현실을 도외시하지는 않았다. 특히 노론과 소론의 권력 쟁탈이 심해짐에 따라 목소리와 역할도 커졌다. 김창흡은 가문의 힘을 빌려 정치적인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벼슬에 관심이 없고 글 읽기를 좋아하며 산수를 즐긴 탓인지 그의 다시(茶詩)에는 차 생활에 대한 운치가 보인다. 다음은 김창흡의 『삼연집』 습유 권4에 기록된 「죽엽차(竹葉茶)」라는 시이다.

 

  그 향기로운 어린잎 따서

  맑고 깨끗한 물에 달이네.

  왕유는 다 누리지 못했고

  육우는 두루 맛보았다네.

  여린 불로 살살 끓이면

  맑고 부드럽기 옥전이라네.

  푸른 연기 줄기줄기 서리어

  멀리 숲으로 이어져 돌아가네.

 

제목으로 보아 대나무 잎으로 만든 차인듯하다. 향기로운 어린잎으로 만든 차를 맑은 물에 달이니 향이 절로 피어나고 이러한 즐거움을 왕유는 다 누리지 못했을 것이고 육우는 두루 맛보았을 것이라고 한다. 왕유는 대나무를 좋아해 좋은 대나무가 있는 집을 보면 아랑곳하지 않고 대나무를 감상하고 시를 지었다. 심지어 남의 빈집에서 대나무를 심고 기르며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 대나무)’ 없이 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김창흡은 왕유는 대나무의 기상만을 좋아했지 죽엽차의 맛은 몰랐을 것이고, 육우는 온갖 차를 맛보았으니, 자신이 맛본 죽엽차도 맛보았음을 은근히 자랑한다. 푸른 연기가 가닥가닥 피어 숲속으로 이어져 돌아간다고 하니 아무래도 차 한잔에 잠시 세상근심을 잊은 듯하다. 이렇게 차는 자신의 운치를 기르는 것 같다. 4월의 햇차를 기다리며 나만의 운치를 마음속에 새겨보자.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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