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을 지키는 농촌진흥청 시드볼트
세계 식량을 지키는 농촌진흥청 시드볼트
  •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 승인 2024.03.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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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시드볼트는 말 그대로 종자(시드)를 보관하는 금고(볼트)다. 미래 인류와 지구를 위해 안전하게 종자를 보존하는 시설을 뜻한다. 시드볼트에 한 번 들어간 종자는 지진이나 전쟁 등 위기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것이 종자 연구와 활용을 위해 중·단기적으로 종자를 보관하는 시드뱅크와 다른 점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시드볼트는 동토의 땅이라 불리는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 섬에 있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일 것이다. 이곳은 전쟁, 전염병,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등으로 작물이 소멸할 것을 대비해 설립됐으며 전 세계 식물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를 일컫는 다른 말로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가 있다.

지난 3월 6일, 수원에 자리한 농촌진흥청(RDA) 농업유전자원센터에 시드볼트가 탄생했다. RDA 시드볼트는 인류 먹거리로 이용되는 식량 작물을 비롯해 원예?특용작물 등 다양한 식물 유전자원이 재난으로 소실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한 안전중복보존 시설이다.

안전중복보존의 중요성은 지금도 계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세계에서 10번째 규모의 종자은행으로 자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집한 식물 종자 15만 점 이상이 보존된 우크라이나 국립식물유전은행은 최근 러시아의 폭격으로 수많은 종자가 소실되는 비극을 맞았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보관돼 있던 종자를 반환받아 복구할 수 있었는데, 시드볼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찔할 따름이다. 시드볼트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농촌진흥청에 안전중복보존 시설이나 기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2008년 농촌진흥청은 세계작물다양성재단과 협약을 체결하고 공인된 국제종자보존소로 지정받아 세계종자안전중복보존소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내에 시드볼트 관련 적용법이 없는 상태였다. 최근 해외에서 안전중복보존을 위한 종자 수탁 요청이 증가하면서 종자를 효율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2020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시드볼트 종자 검역요령을 제정하고, 2022년에는 개정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협업해 농업유전자원센터 장기저장고를 시드볼트로 신규 지정했다. 이제 시드볼트용 종자는 국내로 반입될 때 관련법에 따라 일반 종자와 달리 취급되면서 신속하게 통관절차를 밟게 된다. 이로써 종자의 수명은 더 길게 유지돼 안전중복보존 서비스를 세계 각국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됐다.

RDA 시드볼트는 완전히 밀폐되고 외부와 차단된 저장공간이다. 영하 18도, 습도는 30~40%로 유지되며, 종자의 발아와 신진대사가 억제된 상태로 보관해 종자가 무려 10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 비상시에는 경보시스템이 작동하며, 진도 6~7을 견디도록 설계됐다. 정전에 대비해 비상전력도 구축돼 있다. 블랙박스가 담긴 상자를 4열 25단으로 쌓으면 25만 점 이상 보존할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이다.

해외에서 RDA 시드볼트에 안전중복보존을 원할 때는 우선 농촌진흥청과 상호협약을 체결한 후 보존하고자 하는 종자를 블랙박스에 담아 완전히 밀봉해 한국으로 발송한다. 한국에 도착한 종자는 시드볼트용 종자 검역을 통과한 후 수원의 RDA 시드볼트로 이동, 입고 절차를 밟는다. 블랙박스 입고에는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 이용된다. 이렇게 입고된 종자는 천재지변 등 비상시 혹은 해당 국가에서 반환요청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구히 보존된다.

현재 안전중복보존 중인 시드볼트용 종자는 네팔, 라오스, 몽골,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키르기즈공화국, 태국, 필리핀 등 10개 나라와 국제기구인 세계채소센터에서 요청한 보리, 밀, 벼, 옥수수, 콩류 등 40,424자원이다. 입고 후 지금까지 반출된 사례는 없다.

지난해 11월 농촌진흥청은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국제기구 아프리카벼연구소와 벼 자원 안전보존 협약을 맺었다. 올해 상반기에 벼 5천여 자원을 시작으로 2028년까지 5년간 아프리카벼연구소가 보유한 2만 2,000점의 벼 유전자원이 RDA 시드볼트로 들어오게 된다. 6월에는 국내에서 한-아프리카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이와 연계해 아프리카벼연구소와 종자 수탁식을 가질 예정이다. 앞으로는 국제기구인 세계작물다양성재단과 협력해 종자 보존을 희망하는 국가의 수요를 반영해 안전중복보존서비스 제공 국가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식량 시장이 혼란스럽고, 날로 심해지는 기후변화로 식량 위기가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인류 식량을 지키기 위한 농업 종자저장고 RDA 시드볼트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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