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절 독일 유학길 여정
냉전시절 독일 유학길 여정
  •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3.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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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br>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두 번째 독일 방문으로, 함부르크(Hamburg)에 도착하여 공항대합실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몹시 착잡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많이 낀 북독일의 스산한 날씨에 당시 공산권의 고도 베를린으로 가는 나에게 학자로서 여러가지 특별한 감회가 스쳐갔기 때문이다.

그 감회란 첫째, 비스마르크(Bismarck)가 신성로마제국의 종주국으로서 약 600년 동안 오스트리아·독일과 그 주변 국가들을 통치했던 오스트리아(1866년 쾨니히그레츠 결정전)와 프랑스(1870년 보불전쟁)를 전쟁에 끌어들여 차례로 격파시킨 뒤 독일 제2제국(프러시아 국가)을 탄생시킨 것에 대한 것이며, 둘째, 이것으로 양이 차지 않은 히틀러가 철저한 반공(反共)을 내세우면서 동유럽 정벌에 나섰고 이에 서양 열강이 히틀러의 제3제국을 반공의 보루로 삼기 위해 비위를 맞추면서 유화정책(宥和政策)을 썼지만 결국 전쟁의 결과로 독일은 두 동강이 나고 공산주의가 턱밑까지 다가온 데 대한 것이었다. 개인·사회·국가 생활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이러한 패러독스 속에는 어떠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인지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답이 나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먹구름과 세찬 바람에 기체가 몹시 흔들리는 동안 유학을 위한 첫 비행 중에 지중해상에서 폭풍우를 만나 비행기가 와해될 뻔했던 악몽이 되살아나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미국이 관리하는(영국과 프랑스의 공항도 따로 있었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고, 이내 본에서의 만남에 이어 두 번째로 베를린 자유 대학교(이 대학은 원래의 베를린대학교(일명 훔볼트대학교라고 칭하며, 1810년에 건립)가 제2차대전 후 동독에 속하게 되자 1810년에 서베를린에 미국의 주도로 세워진 대학교를 말하며, 참고로 필자가 학위를 한 독일어권 最古의 비엔나대학교는 1365년에 개교했음)의 놀테 교수와 상봉했다.

주말에 휴일이 겹쳐서 3~4일간 직원을 못 만나게 된다면서 객원교수 아파트 열쇠를 건네주었고 함께 슈퍼마켓으로 가서 먹을 것을 샀는데, 원로 교수님은 특별히 포도주 한 병을 사주면서 자축하라고 했다. 참으로 여러 면에서 고마운 분이다. 지금도 그 이름이 잊히지 않는 가리가(Gary Strasse)의 베를린 대학 객원교수 아파트는 쾌적한 현대식 시설에 아늑한 정원이 있어 지내기에 정말 기분 좋은 곳이었다. 세계 도처에서 온 학자들과 함께 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TV를 보며 출근 시간에 맞춰 연구소에 나가는 생활은 학문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하고도 달콤한 혜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같이 숨통이 트이는 때도 찾아들게 마련인 것이다. 아파트 사감은 방이 너무 부족해 1년 전에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방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단시간 내에 예약이 가능했던 것은 ‘베를린 대학 수호(守護) 멤버’인 놀테 교수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필자가 잘 모르는 분이었지만, 그때까지의 평을 종합해 보면 보수 성향이 짙은 놀테 교수는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듯했다.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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