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빵과 장미 그리고 백래시
세계 여성의 날, 빵과 장미 그리고 백래시
  • 전정희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
  • 승인 2024.03.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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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지난 3월 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3월 8일,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추모하며 2만여 명의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여성 투표권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이 계기가 됐다.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고, 그래서 빵과 장미는 세계 여성의 날을 상징하게 되었다. 빵은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 곧 사람답게 사는 인권을 의미한다.

유엔에서는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에는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했다. 이때부터 ‘세계 여성의 날’은 전 세계 여성들이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1985년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하면서 전국적 규모의 행사를 열었으나, ‘세계 여성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양성평등기본법>이 개정된 2018년에 이르러서다. 유엔이 ‘세계 여성의 날’을 공식화한 지 41년이나 지난 후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과 착취 종식, 평등권과 동일 임금 쟁취를 위한 그 시위는 국내외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91년 수전 팔루디가 지적한 것처럼, 오히려 여성혐오와 ‘백래시’가 몰고 온 성평등 위기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적 보수화와 퇴행으로 이러한 ‘백래시’, 즉 여성운동이 힘들게 성취해 낸 성과들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확산되었다.

윤석열 정부 탄생 이후 성평등 의제는 빛이 바랬고 4월 총선을 앞두고도 여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리고 선거가 순항했기 때문에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도 아직 굳건하다.

지난해 여름 잼버리 사태 이후 여성가족부 장관의 책임을 물어 사퇴시키려 했다가 해를 넘겨 2월에야 사표가 수리되었다. 장관의 공백을 그대로 두고 부처 폐지를 진행하려는 의도를 확실히 했다. 일자리 관련한 것은 고용노동부로, 복지 부분은 복지부로 보내겠다고 한다. 그러면 성평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기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으니 성평등 의제는 큰 관심사에 끼지도 못한다. 성평등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여성혐오, 반페미니즘 정서 등 여성을 옥죄는 사회 분위기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는 성차별의 모습들을 보게 되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100여 년 전에 부르짖었던 그 외침이 아직 우리 사회에도 살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는 전체 146개국 가운데 105위였다.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27년째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견고한 성별 임금 격차와 불평등한 직장 문화, 미비한 돌봄 체계로 인한 경력 단절은 여전하다.

2024년 세계 여성의 날 공식 주제는 ‘여성에게 투자하라:진보를 가속화하자’(Invest women:Accelerate progress)이다. 이미 2005년 유엔개발계획(UNDP)은 보고서에서 “한국이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한다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발전과 직결되어 있다. 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혐오, 폭력을 넘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동반자로서의 인식과 자리매김이 절실하다.

 

전정희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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