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5) 정경심 시인의 ‘진통제’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5) 정경심 시인의 ‘진통제’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4.03.10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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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 정경심 시인

 

통증이 하얗게 칼을 번뜩이면

혈관으로 진통제가 퍼져 나가는 감각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약한 진통제는 전신으로 퍼지는 데 30분쯤 걸리고

그보다 강한 놈은 10분이면 제 할 일을 한다

내 몸은 강한 녀석을 원하지만

내 마음은 인내하라고 한다

너무 아플 때는 인내가 소용없어지고 결국

강한 놈을 불러야 하지만

마음은 늘 약한 놈 먼저 불러

30분쯤 싸우다 지칠대로 지친 뒤에나

강한 놈에게 의지한다.

한두 번 한 일이 아닌데도

마음에는 관성이 있나 보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관성이

 

<해설>

우리 삶이 마음을 내려놓고 옥죄어 오는 미움도 용서를 하면 진통제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요. 살다 보면 육제적 고통은 진통제를 복용하면 조금 덜 하지만 정작 마음이 아플 때는 약도 주사도 없어 우리는 괴로워하면서 슬퍼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행여 마음을 내려놓으면 육체적 고통이 사라질까 하고 수억 번 마음을 내려놓자고 다짐하지만「진통제」을 먹어야 하는 현실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습니다. 우리 인생길이 용서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내려놓은 일이 쉽지 않아서 진통제에 의지하며 버티는 고단한 삶이 시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동안 “내 마음은 인내하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뒤에나” “너무 아플 때 강한 놈”을 부르게 됩니다. 우리 몸과 마음에는 “어쩌지 못하는 관성”이 숙명처럼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구나 진통제를 쓰고 싶어서 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악전고투하며 막다른 선택으로 사용하겠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음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 강 같은 평화가 자리할 수 있을까요.

 

강민숙 시인<br>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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