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북토크 어때요?
이런 북토크 어때요?
  • 최영록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0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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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록 칼럼니스트
최영록 칼럼니스트

 고창 방장산 아래 ‘책만 아는 바보’(간서치)가 운영하는 책방 ‘책이 있는 풍경(책풍)’이 있다. 가보면 알겠지만, 책을 아무리 좋아한대도, 개인이 7만여권의 책을 부여안고 ‘무슨 재미’로 한세상을 건너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 촌구석에서 회원제로 운영한다는데 400명에 육박한다 한다. 한 달에 한번 작가를 초대해 북토크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100명이 넘게 들어가는 인문강당이 꽉 찬다고 한다.

17일(토) 오후 3시의 일이다. 기자 출신인 김주완 작가가 경남 진주에서 올라와 북토크를 한다 했다.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겠으나, 지난해 설 즈음 MBC에서 방영된 다큐 <어른 김장하>는 기억하시리라. 바로 그 어른을 『줬으면 됐지』라는 책으로 세상에 알린 분이다. 20대 중반부터 이제껏 이 사회에 어마무시한 선행을 해오신 한약방 주인 김장하. 책을 보면 알겠지만, 내용들이 부풀림 없이 순전히 발로 뛴 팩트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평범한 성자가 우리와 동시대를 사신다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이름 석 자를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성자’.

작가는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책을 펴내는 순간까지 긴 세월의 취재기를 두 시간 동안 담담히 들려줬다. 오랫동안 취재한 때문인지 선생님을 닮은 듯 겸손했으며, 선생님께 누가 될 것같다며 말을 아꼈다. 성자를 우리에게 알려준 그가 고마웠다. 그게 글쓰는 사람, 기자의 소명인 것을. 그분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본받아야 할 ‘인생 거울’이 아닐까. 아무리 사회가 뒤틀려 돌아가도 우리가 가느다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까닭이다.

작가에게만 들을 수 있었던, 어른의 유머에 모두 웃었다. 사돈부부가 식사를 같이 하는데, 초대받은 바깥사돈이 밥을 먹다가 돌을 씹었다고 한다. 죄송해 하는 사돈에게 즉석에서 “그래도 돌보다 쌀이 많다”고 해 어색한 분위기를 눙쳤다는 얘기다. 돌보다 쌀이 많아야 밥이 되듯,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훨씬, 아니 몇 천 배 많으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것을 비유하는 것같다. 또 하나, 빌 게이츠는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고 묻으니 모두 우물쭈물하자 “마이크로 소프트하게 부른다”고 하여 좌중을 웃게 했다 한다. 하이 퀄리티 유머이다.

작가가 그 어른의 어록, 선행, 덕행의 일화 그리고 숱한 사람의 증언을 기록해 놓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혀 버렸을 수많은 일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소리소문없이 도와준 장학생이 1천여명에 30억이 넘는다는 추산인데도, 어른은 종이쪽지 한 장에도 기록하지 않아 영원한 수수께끼라고 한다.

선생님의 거듭된 고사를 뿌리치고 경상대학교에서 반강제로 드린 명예문학박사 수여식에서 지역언론의 기자가 유일하게 기록해 남게 된 선생님의 즉석 어록을 보라.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그 신문은 제목을 <돈은 똥, 쌓아두면 구린내, 흩으면 꽃>이라고 달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어록은 띄엄띄엄, 조용조용,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외유내강(外柔內剛), 빛나는 ‘진주정신(晉州精神)’의 화신임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선생님은 이 시대 존귀한 ‘참 어른’이다. 보시(베풂) 중의 으뜸, 어떤 집착도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궁행하셨다, ‘진짜 기자’의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졌으나, 어른의 본의가 아님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 <영화 김장하>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신단다. ‘진주문고’의 여태훈 대표는 “한겨울에 아침에 일어나 정신이 몽롱할 때 정수리에 퍼붓는 한 바가지 찬물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는가.

경청하는 청중, 모두 공감하는 짤막한 문답 몇 개, ‘책풍’ 촌장의 “기름진 인문학적 삶을 같이 살자”는 말도 좋았다. 이런 북토크는 열 번이라도 참석하겠다. 진솔한 김주완 기자의 건필과 건강을 빈다. 그대는 그 누구보다 이 나라의 참 언론인. 또한 팔순(1944년생)에 처음으로 사모님과 아파트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 강녕하소서. 영원히 녹슬지 않을, 이 땅의 진정한 ‘빛과 소금’, 알지 못하고 뵙지도 못했지만, 가슴 깊이 사랑합니다.

최영록 <생활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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