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방장산 아래 ‘책만 아는 바보’(간서치)가 운영하는 책방 ‘책이 있는 풍경(책풍)’이 있다. 가보면 알겠지만, 책을 아무리 좋아한대도, 개인이 7만여권의 책을 부여안고 ‘무슨 재미’로 한세상을 건너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 촌구석에서 회원제로 운영한다는데 400명에 육박한다 한다. 한 달에 한번 작가를 초대해 북토크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100명이 넘게 들어가는 인문강당이 꽉 찬다고 한다.
17일(토) 오후 3시의 일이다. 기자 출신인 김주완 작가가 경남 진주에서 올라와 북토크를 한다 했다.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겠으나, 지난해 설 즈음 MBC에서 방영된 다큐 <어른 김장하>는 기억하시리라. 바로 그 어른을 『줬으면 됐지』라는 책으로 세상에 알린 분이다. 20대 중반부터 이제껏 이 사회에 어마무시한 선행을 해오신 한약방 주인 김장하. 책을 보면 알겠지만, 내용들이 부풀림 없이 순전히 발로 뛴 팩트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평범한 성자가 우리와 동시대를 사신다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이름 석 자를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성자’.
작가는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책을 펴내는 순간까지 긴 세월의 취재기를 두 시간 동안 담담히 들려줬다. 오랫동안 취재한 때문인지 선생님을 닮은 듯 겸손했으며, 선생님께 누가 될 것같다며 말을 아꼈다. 성자를 우리에게 알려준 그가 고마웠다. 그게 글쓰는 사람, 기자의 소명인 것을. 그분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본받아야 할 ‘인생 거울’이 아닐까. 아무리 사회가 뒤틀려 돌아가도 우리가 가느다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까닭이다.
작가에게만 들을 수 있었던, 어른의 유머에 모두 웃었다. 사돈부부가 식사를 같이 하는데, 초대받은 바깥사돈이 밥을 먹다가 돌을 씹었다고 한다. 죄송해 하는 사돈에게 즉석에서 “그래도 돌보다 쌀이 많다”고 해 어색한 분위기를 눙쳤다는 얘기다. 돌보다 쌀이 많아야 밥이 되듯,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훨씬, 아니 몇 천 배 많으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것을 비유하는 것같다. 또 하나, 빌 게이츠는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고 묻으니 모두 우물쭈물하자 “마이크로 소프트하게 부른다”고 하여 좌중을 웃게 했다 한다. 하이 퀄리티 유머이다.
작가가 그 어른의 어록, 선행, 덕행의 일화 그리고 숱한 사람의 증언을 기록해 놓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혀 버렸을 수많은 일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소리소문없이 도와준 장학생이 1천여명에 30억이 넘는다는 추산인데도, 어른은 종이쪽지 한 장에도 기록하지 않아 영원한 수수께끼라고 한다.
선생님의 거듭된 고사를 뿌리치고 경상대학교에서 반강제로 드린 명예문학박사 수여식에서 지역언론의 기자가 유일하게 기록해 남게 된 선생님의 즉석 어록을 보라.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그 신문은 제목을 <돈은 똥, 쌓아두면 구린내, 흩으면 꽃>이라고 달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어록은 띄엄띄엄, 조용조용,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외유내강(外柔內剛), 빛나는 ‘진주정신(晉州精神)’의 화신임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선생님은 이 시대 존귀한 ‘참 어른’이다. 보시(베풂) 중의 으뜸, 어떤 집착도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궁행하셨다, ‘진짜 기자’의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졌으나, 어른의 본의가 아님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 <영화 김장하>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신단다. ‘진주문고’의 여태훈 대표는 “한겨울에 아침에 일어나 정신이 몽롱할 때 정수리에 퍼붓는 한 바가지 찬물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는가.
경청하는 청중, 모두 공감하는 짤막한 문답 몇 개, ‘책풍’ 촌장의 “기름진 인문학적 삶을 같이 살자”는 말도 좋았다. 이런 북토크는 열 번이라도 참석하겠다. 진솔한 김주완 기자의 건필과 건강을 빈다. 그대는 그 누구보다 이 나라의 참 언론인. 또한 팔순(1944년생)에 처음으로 사모님과 아파트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 강녕하소서. 영원히 녹슬지 않을, 이 땅의 진정한 ‘빛과 소금’, 알지 못하고 뵙지도 못했지만, 가슴 깊이 사랑합니다.
최영록 <생활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