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립운동가 -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데이지 호킹
3월의 독립운동가 -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데이지 호킹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4.03.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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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데이지 호킹

 마가렛 데이비스는 호주 빅토리아주 출신 선교사이자 교육자이다. 1910년 12월 2일 호주 선교사로 부산에 왔다. 1911년 12월부터 1914년까지 시원여학교 교장, 주일학교 등을 운영하였다. 1916년부터 호주 장로교에서 경영하는 일신여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여성을 교육하고 기독교를 전도했다. 

  이사벨라 멘지스는 호주 빅토리아주 출신으로 1891년 10월 12일 호주 선교사로 부산에 부임했다. 1895년 부산‧경상남도 지역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인 일신여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이 되었다. 

  데이지 호킹은 호주 빅토리아주 출신 선교사이다. 1916년 3월부터 호주 선교사로 경상남도 마산에서 한국어 교사로 근무하고 한국 어린이들을 보살폈다. 1918년부터 호주 장로교가 경영하는 부산의 일신여학교에서 여성을 교육하고 기독교를 전도했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가 부산상업학교와 연락하고 일신여학교 고등과 학생들에게 시위 발생 사실을 알렸다. 1919년 3월 10일 일신여학교 고등과 학생 11명이 벽장 속에서 태극기 50매를 제작하였다. 이때 기숙사 감독 이사벨라 멘지스가 깃대 등 태극기 제작 재료를 제공했다. 

  3월 11일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고등과 학생 김응수 등 11명은 교사 주경애‧박시연과 함께 태극기를 손에 들고 좌천동으로 이동했다. 일신여학교 교장 마가렛 데이비스와 여교사 데이지 호킹도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데이지 호킹은 학생들에게 시위를 권유하며 함께 행진하였다.  

  이러한 일신여학교의 만세시위에 수백 명의 군중이 참여했고 두 시간 후 일제가 주모자 전원을 체포하였다. 이어서 마가렛 데이비스와 데이지 호킹도 체포되었다. 그들은 3월 13일까지 부산진경찰서 유치장에 구류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일신여학교 기숙사 감독 멘지스는 증거인멸을 위해 태극기를 소각하였다. 일제는 국제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이사벨라 멘지스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1940년대에 일제가 기독교 학교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호주 장로회의 신사참배를 강요받는 학교를 경영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동의했던 마가렛 데이비스는 1940년 3월 일신여학교가 폐교되면서 호주로 귀환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마가렛 데이비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이사벨라 멘지스와 데이지 호킹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일신여학교의 3.1운동은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한 대표적인 3.1운동에 해당했다. 사실 이 운동을 주동했던 교사 박시연 등도 여학교를 갓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교사로서보다는 선배로서의 영향력이 더 컸을 것이다. 특히 시위의 계획과 지휘를 비롯한 전반을 여교사와 여학생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성 독립운동 분야에서 지니는 의미가 크다. 

  일신여학교의 3.1운동에서 교장과 교사였던 선교사들은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우려하면서도 태극기 제작 준비를 도와주었고, 시위 당시 학생들을 보호했다. 이에 당시 일제 당국은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일신여학교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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