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9> 차의 길 62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9> 차의 길 62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4.03.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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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성의 낙전당집

우리를 즐겁게하는 것이 무엇인가. 책을 읽는 것인가. 누군가 반가운 이를 만나는 것인가. 열정을 가지고 어떤 것에 도전하는 것인가. 이 모두 우리의 심정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한다면, 끊임없이 삶의 무게에 적응해야 하는 현실 속에 조금은 청량제와 같을 것이다. 또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가 있고 그속에 차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다음은 조선 중기 문예인으로 불리는 신익성(1588~1644)의 「산중에서(山中書事)」라는 시이다.
 

세속의 굴레 많은게 괴로워

흰머리로 전원에 있노라.

덧없는 삶의 이치 깨달으니

지금의 한가로움 이제야 아노라.

차 달이느라 회수에서 물을 긷고

약초 캐느라 미산을 오르네.

이런저런 흥이 때때로 일어나니

그윽한 심회를 버릴 수 없어라.
 

이러쿵 저러쿵 세상살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아 그 굴레가 괴로워, 흰머리가 되어서야 전원에 있으니 이제야 세상의 이치 깨달아 한가로움에 신선이 된 듯, 차를 달이기 위해 중국의 회수(淮水)에서 물을 찾으니 그 흥이 저절로 일어나는 마음을 표현한 시이다.

신익성은 상촌 신흠(1566~1628)의 자제이며 부마이다. 호가 낙전당(樂全堂)·동회거사(東淮居士)이다. 서울 서부 창동에서 태어났다. 12세 때인 선조 32년(1599년) 선조의 3녀 정숙옹주와 혼인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신익성은 왕실을 대할 때도 당당하였다. 한번은 정숙옹주가 투기를 하자 신익성이 옹주의 뺨을 때려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지아비가 가는 곳에 지어미도 가야 한다’며 옹주를 귀양지에 데려가려 하여 귀양을 면했다고 한다.

청장년기는 광해조의 혼탁한 정치 상황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후일 정치적으로 복권이 된 후에는 고급문화와 문학을 향유하고 이를 주변 인물에까지 전파하는 문화의 선도자 역할을 하였다. 이는 명문가의 자제로 올바른 훈육을 받고 자랐으며 대학자의 사상과 학문·문학·문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그의 성격은 자유로우면서도 절제할 줄 알았는데, 그가 문예인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시 속에는 차와 관련된 구절이 종종 보인다. 술과 함께 차를 마신 듯한 시도 있다. 「촌거잡흥(村居雜興)」이라는 시이다.
 

배갯머리는 하늘이 가깝고

몸뚱이 곁으로 해가 기우네.

봄새는 안개 너머에서 노래하고

산나물은 눈 속에서 싹이 트네.

외물이 어찌 누가 되랴.

그윽한 거처 자랑할 만하네.

술 몇 잔에 살짝 취하니

목을 축이려 햇차를 들이키네.
 

배갯머리가 하늘에 가깝다고 한 것으로 보아 산속의 전원인 것 같다. 산나물이 눈속에서 싹이 트고 봄새가 노래를 하니 봄이 피어나는 소리와 함께 눈의 즐거움에 취해 있어 보인다. 거기에 술 몇 잔에 살짝 취기까지 올라와 목을 축이려 햇차를 마신다고 하니 아무래도 정신을 맑게 하려 햇차를 마신 게 아닐까. 이틀 후면 경칩(驚蟄)이다. 달이 바뀌면 곡우(穀雨)가 돌아오고 이름 봄의 정취가 조금씩 움트니 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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