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주년 맞은 3·5 만세운동… 호남 최초 독립운동 기록
105주년 맞은 3·5 만세운동… 호남 최초 독립운동 기록
  • 조경장 기자
  • 승인 2024.03.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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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문화재야행 어린이 문화재해설사 프로그램’이 2월29일 태국 파타야에서 개최됐던 ‘2024년 아시아 피너클 어워드’에서 베스트 어린이 프로그램을 수상했다.<br>
한강 이남 최초로 일어난 ‘군산 3·5 만세운동’은 호남지방 첫 독립운동으로 그 의미가 크다.

1919년 3월 1일. 일제 강점기에 반발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며 일어난 대규모 비폭력 독립운동, 바로 3·1 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4월 30일까지 만세운동에 참여한 조선인은 46만 3천86명에 이르고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 ‘평남 강서군 사천장터 시위’, ‘만주 용정 만세운동’, ‘군산 3·5 만세운동’, ‘익산 이리 장날 만세운동’ 등 수많은 만세 시위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한강 이남 최초로 일어난 ‘군산 3·5 만세운동’은 호남지방 첫 독립운동으로 그 의미가 크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5주년. 만세운동 105주년을 맞은 지금 군산 3·5 만세운동을 다시 조명해 본다.

군산의 3·5 만세운동은 군산영명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 의전에 재학 중이던 김병수가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이갑성(세브란스 병원근무)과 접촉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건네받고 군산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김병수는 독립선언서 등을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박연세·송헌옥·고석주·김수영에게 전했으며 이를 전해 받은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대표는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준비를 거쳐 군산에서 만세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후 적극 가담하는 교사와 학생들은 거사 일을 군중이 많이 모이는 서래장날인 3월 6일로 결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일본경찰에 사전에 발각돼 학교를 급습, 인쇄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 등 독립 만세운동에 관련된 각종 문서를 압수하고 박영세·이두열 두 교사를 압송했다.

이를 지켜본 교사와 학생 70여 명은 이날 오후 군산경찰서 앞에서 연행한 두 교사를 석방하라는 구호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만세시위는 한강 이남의 최초며 호남의 최초로 기록되고 있다.

이튿날 3월 6일 예정대로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예수병원 직원, 구암교회 신도, 일반시민 등 700여 명이 서래장터를 지나 군산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을 외쳤다.

군산에서 3월 5일부터 8일까지 만세운동으로 검거된 사람은 90명으로 63명이 구속 송치됐다.

또한 군산은 3·5 만세운동를 기점으로 군산보통학교 방화 항일운동, 옥구대야 장날 항일운동, 임피장날 만세운동, 군산재판소 판결 불복 시위 등 만세시위가 연이어 일어났다.

이런 사건으로 사망 53명, 실종 73명, 부상 195명으로 집계돼 사상자 수는 전북 도내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군산문화원 정상호 원장은 “3·5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북을 포함한 호남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는 시초가 된 것”이라며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5년을 맞이한 만큼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적 대통합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군산=조경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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