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제 식민잔재 청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제 식민잔재 청산
  • 박대길 전북민주주의연구소장
  • 승인 2024.02.28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대길 전북민주주의연구소장

 해마다 3월 1일과 8월 15일이 되면, 연례행사로 일제강점기 친일 잔재 청산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 ‘이완용 선정비’는 부안군 줄포면사무소 창고에서 요지부동이다. 수년 전, 관계자들에게 공개를 제안했지만, 감추는 것도 아니면서 방치하고 있다.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천년 고찰 개암사 가는 길, 벚나무 터널이 끝날 즈음에 「기미 三一독립운동 추모비」가 식당 입구에 비켜 서 있다. 추모비 뒤에는 음식 메뉴가 지워지지 않은 양철판이 울타리를 치고 있으니 가관이다. 게다가 글을 새긴 비석은 재질이 검은 돌이라 글씨가 뚜렷하지 않아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사람들이 三一독립운동정신을 잊지 않겠다며 추모비를 세운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추모비를 지난 개암사 주차장에서 사찰 쪽으로 가다 보면 2개의 비석과 2개의 부도(浮屠)를 볼 수 있다. 맨 왼편에 ‘법명당대선사생사리비(法明堂大禪師生舍利碑)’가 있고, 우측으로 ‘법명당생사리부도(法明堂生舍利浮屠)’, 그리고 舟峰堂(주봉당) 부도가 있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 거의 같은 크기의 비가 번듯하게 세워져 있는데, 大正[대정] 15년(1926) 10월 건립한 ‘고종육위하전김삼랑기념비(故從六位賀田金三郞紀念碑)’이다.

 언뜻 종6위의 벼슬을 한 하전이라는 호를 가진 김삼랑의 기념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념비의 주인공은 일본인 가다 긴자부로(賀田金三郞. 1857~1922)이다.

 「부안인터넷신문」은 2023년 2월부터 5회에 걸쳐 이 일본인을 「부안군 상서면 하전농장(賀田農場) 이야기」에서 소개하였다. 이 기념비의 주인공이 하전농장의 가다 긴자부로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도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일본인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는 그저 그렇다. 기념비를 세운 사람은 긴자부로의 양아들이며 사위인 賀田直治(가다 나오지)이다.

 조선총독부가 1910년부터 1935년까지 25년간 일제에 협력한 민관 공로자를 직접 선정하여 1935년 출간한 『조선공로자명감』은 그 당시 일제 식민 통치에 앞장선 일본인 2,560명과 조선인 353명 등 모두 2,913명의 명단과 친일 행적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긴자부로는 일본의 초기 대만(臺灣) 식민 통치를 보좌하여 ‘대만 개발의 대원로’로 나아가 ‘일본의 식민지 개척에 있어서 입지전적(立志傳的)인 1인자’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친일 매국노 한상룡이 ‘조선의 은인’이라고 감탄한 일본의 식민지 개척의 첨병이었다.

 긴자부로를 위한 기념비가 1926년 개암사 입구에 세워진 것은 부안군 상서면 일대에 하전농장을 설립하고 운영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긴자부로가 죽은 후 사업을 물려받은 가다 나오지가 긴자부로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필자는 어느 기초단체장이 관내 주민을 대상으로 ‘부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자리에 함께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하층민이 사는 마을을 천시하며 부르던 ‘부락’ 대신 ‘마을’이라는 우리말 사용을 당부하는 자리였다. 당연하게도 필자는 그 기초단체장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본의 조선 식민지 개척에 첨병이었던 긴자부로를 잊지 않으려 세운 기념비가 해방된 지 79년, 기념비가 세워진 지 98년이 지난 지금, 버젓이 그 자리에서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그것도 방치된 「기미 三一독립운동 추모비」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제 식민잔재 청산, 그날은 언제 오려나.

 박대길 <문학박사 / 전북민주주의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