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근거 논문 아전인수식 해석한 복지부
‘의대 증원’ 근거 논문 아전인수식 해석한 복지부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4.02.2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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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누구도 예상 못한 규모의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한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의·정간의 정면충돌로 인한 의료대란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동안 의료계는 의대 증원에 대해 겉으로는 반대를 주장하면서도 필수의료와 지방 의료 취약 지구에 의사가 부족한 현실, 그리고 노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의 증가 등을 감안하여 적절한 의대 증원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무책임한 의사 수의 증가는 지방보다 수도권으로, 또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같은 필수의료보다는 피부, 미용, 성형 등으로 의사 인력이 쏠리는 왜곡된 의료시스템을 더욱 망가뜨릴 뿐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필수의료와 지방 기피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인 필수의료 과에 대한 불합리한 보상제도와 지나친 의료사고 같은 위험 부담경감 등 문제가 많은 의료시스템에 대한 현실적 해결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지금부터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를 늘려도 6년 의대 졸업과 5년 수련을 거쳐 그 효과를 확인하려면 11년 이상이 걸리지만 현재 산부인과, 소아과처럼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이면서도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있는 전문의들을 다시 필수의료와 지방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경시한 채 일방적인 의대 증원에 대한 발표는 의료계에 반발을 불러왔는데 더욱 충격을 준 것은 2,000명 정원 확대라는 엄청난 증가 규모였다. 2,000명은 현재 3,000명인 의대 정원에 80%에 달하는 규모로 과연 현 의과대학들이 이런 증가를 감당할 만큼 교수, 강의실, 실습 과정 등이 준비될 수 있을지, 의과대학을 졸업한 신규 의사들이 수련 받을 대학병원 수준의 수련병원에 그만한 정원이 가능할 것인지, 또 추가로 들어갈 그 재원을 마련 가능은 한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이 충분히 분석되어 나온 근거인지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의대 교육과는 별개로 갑작스러운 대규모의 의대 증원이 이공계 등 대학 교육 전반에 가지고 올 파장도 고려된 것인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현재에도 전국 의과대학 전체가 최상위 우수 학생으로 채워지고 그다음에 서울대 등 명문대의 이공계가 겨우 정원을 채우는 현상 속에서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이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부추겨 전통적인 과학기술 강국인 대한민국의 산업과 백년대계라는 교육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간과할 일이 아닐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정부의 충격적인 규모의 의대 증원에 대해 의료계와 의과대학 교수 등은 그 근거가 무엇인지 밝히라고 요구하였는데 정부는 그동안 세 명의 학자에 의해 발표된 논문에 근거해 정한 규모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토대를 제공한 전문가 3명은 정부의 정책이 본인들 논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또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세 명의 전문가는 이 연간 750∼1,000명 규모의 증원을 제안하며, 이들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고령화로 의사 부족은 예견된 미래”라면서도 급격한 증원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증원의 근거로 참고한 연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KDI △서울대학교 등이다. 애초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리면서 근거로 제시한 자료는 이 전문가들이 각자 작성한 연구 보고서들이었다. 세 보고서의 전망치와 의료취약지 의사 부족분을 종합해 10년 후 의사가 1만 5,000명 부족하다고 보고 5년간 매년 2,000명씩 늘린 후 재조정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대 연구의 저자인 홍윤철 교수는 ‘의사 인력 적정성 연구’ 전체보고서 276쪽의 내용을 무시한 채 복지부가 이 연구의 5쪽 자리 요약본을 의대 증원 근거라 밝힌 것이라며 “의사 인력 증가는 의료제도 개혁이 이뤄진 후에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정부의 의대 증원 근거 자료 발표 전에도 “문제가 많은 의료시스템을 고친 후 증원 규모를 계산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는데 (복지부가 보고서의) 앞부분만 가져다 쓴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지역 의대만 연간 750명을 증원한 후 5년 단위로 재평가하자”라고 제안했다. 

보고서에서 점진적으로 의대 증원을 늘리자고 했던 권정현 연구위원(KDI)은 매년 5%씩 증가하여 2035년 4,500여 명의 정원이 되면 그 상태에서 유지하며 재평가가 필요함을 주장한 논문임을 밝혔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비슷한 규모의 증원을 제안하며 필수의료와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시스템 개선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가 대규모 증원의 근거로 제시한 연구자 모두 논문의 진의가 왜곡됨을 강조하며 2,000명 증원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복지부는 의대 증원 근거의 아전인수식 해석을 멈추고 왜 2,000명이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증원 계획을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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