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3) 서안나 시인의 ‘애월, 우크라이나’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3) 서안나 시인의 ‘애월, 우크라이나’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4.02.2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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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월, 우크라이나’
 

 - 서안나 시인
 

 선물을 받았다
 젊은 나이에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사람
 외국 공항 면세점에서 샀다는 향수
 

 없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함께 산 향수
 아이가 좋아했던 젖내가 난다
 

 향수를 뿌리면
 어미의 몸 냄새가 끌고 온
 국경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부서진다
 

 젖 불어
 푸른 실핏줄 불거진
 향수를 뿌리고 나는
 국경처럼 가로로 울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 뉴스가
 흰 자막으로 흘러나온다
 

 <해설>  

 제주도는 4.3 항쟁의 비극적인 서사가 무겁게 자리 잡은 공간입니다. 바다에 반짝이는 햇살과 바람에도 슬픈 울음이 배어 있습니다.

시인에게 애월은 구체적인 삶의 공간이자 실존의 공간입니다. 원초적인 비극이 시인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기에 선물로 받은 “외국 공항 면세점에서 샀다는 향수”가 “젊은 나이에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사람”으로 비극의 지평이 확장됩니다.

이는 애월의 비극이 바닷물에 휩쓸려 오래 궁굴려진 조약돌처럼 시인의 내면에 육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없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함께 산 향수”에서 “아이가 좋아했던 젖내”가 나고, “향수를 뿌리면/ 어미의 몸 냄새가 끌고 온/ 국경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부서지는” 환영과 조우합니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제주 4.3 항쟁의 비극이 바람처럼 살아나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 뉴스가/ 흰 자막으로 흘러나오고” “국경처럼 가로로 우는” 까닭입니다.

이처럼 “ 애월, 우크라이나” 시 세계는 개인의 사연을 뛰어넘어 제주의 서사가 되고, 인류 서사로 의미를 확장 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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