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문명에 훼손당하지 않은 시(詩)의 영토 - 이봉명의 『검은 문고리에 빛나는 시간』
<서평> 문명에 훼손당하지 않은 시(詩)의 영토 - 이봉명의 『검은 문고리에 빛나는 시간』
  • 이병초 시인
  • 승인 2024.02.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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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명 시인의 '검은 문고리에 빛나는 시간'

시를 쓰는 행위는 시의 갱신임과 동시에 자신을 떠나는 여행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정점(頂點)에 다다른 시편들에는 시인이 시 현실에 간섭함이 없고 타 시인이나 독자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려는 인상이 적다. 이봉명 시인의 시편들도 이 지점에 있어 보인다.

그는 첫시집 『꿀벌에 대한 명상』 이후 여덟 번째 시집인 『자작나무숲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시 질서를 보였는데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아홉 번째 시집인 『검은 문고리에 빛나는 시간』(작가, 2023. 12.)에 수록된 시편들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시의 숨결이 뿜어내는 살뜰함은 변함없이 적상산 근처의 토박이 삶에서 촉발되었을지언정 말로 그치기 일쑤인 시의 갱신이 시편들에 활착된 것이다.

 

어머니의 흰 고무신 끄는 소리

나무 사이사이로 별빛 스며드는 낌새에

호롱불이 흔들리는 시간

바람이 눈발을 껴입을 모양이었다

은색 손톱 같은 초사흘 달은

전등 없는 마을 입구에 걸어 두었다

-「초사흘 달은」, 전문.

 

시의 갱신은 시의 형식이나 내용의 일탈을 뜻하지 않는다. 호롱불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람이 눈발을 껴입을 모양”으로 읽어내거나 손톱달을 “전등 없는 마을 입구에 걸어 두었다”라는 언술은 시의 갱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과감한 생략을 통한 시의 내구력(耐久力)이 햇귀처럼 빛난다. 옳고 그름, 흑과 백, 선과 악, 있다와 없다 등등의 이분법적 사유에 닿지 않는- 자연의 질서에 웅숭깊은 정서로 감응한 갱신의 시편들은 「다시 여름밤」, 「소나기」, 「토하」, 「장마」, 「꼬창모 같다 하였다」, 「돌무더기 근처」 등으로 볼 수 있다.

문명과 관계없이 유지되는 생활공간이 있을까. 어른이란 생명체가 현존하고 모두가 존중받으면서 사는 공간. 이봉명의 시편들엔 이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얽둑배기, 아장살이, 새웃국, 숯골 날망, 볕살, 뜨게부부, 움막, 허깨비, 썽그런 막걸리, 챙이, 부석짝, 부지깽이, 헝겊 심지, 간각, 데시근하다, 천둥지기, 꼬창모, 호락질, 복령망태기, 얼럭들녘, 삐약길, 삐딱밭, 살강, 들창, 볏술, 놋대접, 와그리, 뒷간귀신, 정지칼, 삽짝문 등의 시어들은 시원의 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공간엔 현대성을 핑계로 텅 빈 기표에 불과한 언어의 휘발성을 일삼거나 시행의 앞뒤의 문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적상산 그늘에서 꿀벌을 치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는 시인. 자연과 인간은 동격이라는 게 이봉명 시의 언어미학이지만 그는 외따로 존재하는 시인이 아니다. 일상의 동적 상황을 언어의 눈금으로 걸러낸 갱신의 어법, 기억 속의 풍경을 재현해내는 메타언어의 세계는 존재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시는 별개의 생명체가 아니라 부박한 현실 논리에 훼손당하지 않은 언어의 영토라는 점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는 당신, 문명과 자본이 감춘 야만적 속성을 야물게 걷어찰 자유를 명백하게 가지고 있는, 야성을 포기한 적 없는 당신.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욕망을 저버리지 않은 순정한 당신이 이봉명 시편들 속의 주인공이며 한국 시의 희망이다.

 

이병초 시인
이병초 시인

글 =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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