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현대판 효자, 다큐멘터리
[독자수필] 현대판 효자, 다큐멘터리
  • 정석곤 수필가
  • 승인 2024.02.20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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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곤 수필가

  섣달 그믐날 아침이다. 낯선 아주머니가 인사를 해 엉겁결에 답인사했다. 앞집 아주머니였다. 잠깐 있다가 또 만났다. 아들딸이라면서 인사를 시켰다. 할머니 아버지랑 설을 쇠려 온 거다. 키가 훤칠한 아들과 아리따운 딸이었다. 아주머니의 순수한 심성이 아름다워 칭찬이 절로 나왔다.

  앞집이 한 해를 못 채우고 이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설을 세 번이나 쇠고 있다. 김 사장님은 둘째 아들인데도 일찍 홀로 되어 아흔 살을 바라보신 어머니를 혼자 봉양하고 있다. 은퇴하고 숨도 돌리지 못한 채 단독주택인 앞집을 임대해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모셔왔다. 어머니 유산을 보고 그럴 거라 여겼는데, 1원 한푼 없다고 한다.

  한 해 두 해가 지나도 효심은 지칠 줄 몰랐다. 사장님이 겉으론 잔잔한 호수 같아 보이지만 맘은 천둥 번개가 치고 폭설이 쏟아지기도 했을 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덕진 연못 오리들은 유유히 놀며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두 발은 물속에서 계속 움직이는 고통이 있다. 사장님도 웃는 얼굴이지만 마음은 오리의 발처럼 요동칠 것이다.

  아침 8시면 어머니를 주간보호센터 차에 태워드린다. 혹시 차가 늦을까 봐 잠깐 앉으실 낮은 간이 의자를 들고 어머니를 뒤따라 나온다. 오후 5시가 되면 어머니를 마중 나간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차에 태워 등원시키고 저물녘 하교 차를 기다린 것 같이 사장님도 날마다 반복하고 있다. 낮에는 어머니 드실 걸 준비하며 센터에서 전화가 오려나 대기상태란다. 고향에 있는 농장에 갈 때면 어머니를 차에 태워드리고 곧바로 한 시간 쯤 달려간다. 일하다 말고 어머니 오는 시간을 맞추느라 허겁지겁 달려온다. 밭의 모든 게 어머니로만 보이고,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겠는가.

  사장님은 효도의 어려움을 서울에 있는 부인한테는 하소연이 끝이 없겠지만 여기는 나눌 분이 없다. 가끔 어머님의 건강 정도를 물어보곤 한다.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기역에 가깝게 굽히고 걸으시나 활동하시는 데는 괜찮아 보인다. 암보다 무섭다는 치매가 있어 모시기가 힘들다고 한다. 한때는 밤에 안 주무시며 몰래 큰일을 보시고 그걸로 벽에다 그림을 그리셨다는 게다. 아침이면 주간보호센터를 안 가려 떼도 쓰셨는데 지금은 그 자체를 잊어버리셨다니 다행이다.

  현대판 효자, 김사장님 다큐맨터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머니를 믿을만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고 자주 찾아 뵈어도 효자란 밀을 들을 수 있을 텐데, 어머니에게 자기 삶을 송두리째 바치고 있다. 부인은 직장 근무와 살림을 하느라 몸과 맘고생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시어머니와 남편 걱정에 전주까지 오가는 수고가 더해지니까 ···.

  사장님 자녀도 나름대로 두 집 살림에 고민거리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현대판 효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백행지본百行之本인 효孝’의 가르침을 받으며 사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들딸의 얼굴이 부모님의 얼굴처럼 순박하고 아름다웠다. 부모의 효행이 자녀에게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흐뭇했다.

  지금은 핵가족에다 자녀가 한 둘이라 미래보다는 현재만을 귀하게 여겨 효 교육은 뒤로 밀리고 있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 간에 벌어진 대형 사건으로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앞으로 더 그럴 거다. 현대판 효자, 김 사장님 다큐맨터리가 널리 알려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나이지면 좋겠다.

 정석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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