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은 온다
그래도 봄은 온다
  • 문리 지든갤러리,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 승인 2024.02.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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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 지든갤러리,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설을 고비로 동장군이 고개를 떨구었다. 오늘은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다. 이제 추운 겨울은 가고 따뜻한 봄을 맞는 거다. 물론 꽃샘추위가 잠시 힘자랑하겠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처럼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 튼다. 어릴 적 이맘때는 서쪽 노을이 아름다운 뒷동산에 올라 연을 날리고, 밤마다 망우리를 돌리면서 아무런 근심 없이 이른 봄을 즐겼다. 정월 대보름까지.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마냥 재밌는 불놀이나 망우리, 연을 날리다가 농사일을 시작하는 어른의 눈에 띄면 지청구를 듣는다. 그전까지는 “매똥 산불 조심혀.”라며 미소 짓던 학동댁이 돌변해서 꾸짖는 게 못내 서운했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연은 대보름에 액을 쫓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 글을 써서 연실을 끊어 멀리 날리는 것. 한해의 액운과 재앙을 연에 실어서 날려 보내고 복을 맞아들이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는걸.

 아마 그때 이걸 알았더라면, 우리집에서 애완 겸 식용으로 키우는 똥개들(필자에게는 애완견이었지만, 복날(伏日)에는 여지없이 식용이었다). 그 “복구와 워리”가 이웃집 개와 싸움에 져서 깨갱거리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빨리 크기를, 비가 내려면 재미난 망우리를 못 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글을 썼을 거다. 아주 간절하게. 그것이 특별하게 피해야 할 액운이고 간절히 빌어야 할 복이었으니까.

 방학을 시작할 때마다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벽에 붙여 놓았다. 여러 숙제 중 하나였고, 시간 관리를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정말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대로 하루도 살아 본 적이 없다. 방학숙제 중에서 제일 힘든 게 일기였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일상, 밀림의 왕자 타잔을 꿈꾸며 뒷동산 나뭇가지에 빨랫줄 매달아 놓고 맨날 놀기만 했는데, 뭘 쓰란 말인가! 그때, 나른하고 지루한 시간 속에서 그냥 놀았다. 지금은 좀 색다르게 쉬고 있다. 허구한 날 멍때리고, 하루에 30쪽 책을 즐기고, 영감(靈感)이 오면 그림을 그린다. 이게 맨날 필자가 하는 일 같지 않은 일이다.

 해마다 2월에 예술가들은 사업계획을 세운다. 문화재단이나 공공기관에서 공모하는 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위해서. 올해도 필자는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몇 군데를 다녀왔다. 간 곳마다, 심사를 시작하기 전에 “예산이 줄었습니다.”라고 담당자들이 겸연쩍게 말했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주눅 들어서. 면접심사에서 마주한 지원자들의 열정과 간절한 눈빛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뼈아프지만, 예술가에게도 황금종이는 실존이자 부조리다. 올해 미술판도 허약하게 멍들어 갈 것 같다. 다시 회복해서 일어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비 내리는 밤의 짙은 어둠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역사적 퇴행으로 생긴 무력감과 모멸감 속에서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오는 4월 30일까지, 연석산우송미술관에서 <안녕하십니까> 전이 열린다.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인연 맺은 중국과 미얀마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꾸린 기획전이다. 미얀마 사진가 응게 레이(Nge Lay)·중국 조각가 류수이양(Liu Shui-yang)·리훙보(Lee Hong-bo). 이들은 죽음·폭력· 부조리·상흔 등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다뤘다.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미술가들의 예술적 발언을 통해 역사적 퇴행 속에서 몸살 앓는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진 거다. 은유나 상징을 뺀 즉물적 직설이 묘하게 매혹적이어서 눈을 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당차고 거침없는 예술적 항변이 우리 삶의 고단함을 푸는 위안처로 작동하고 있다.

 문리 <지든갤러리,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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