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2) 김민재 시인의 ‘시의 길’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2) 김민재 시인의 ‘시의 길’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4.02.18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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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길’
 

- 김민재 시인

 

 꽃무릇 화상을 입고 돌아오는 주말
 아버지 모시고 선운사 갔었지
 불판에 몸 구부러지는 장어 소금 뿌리며
 내가 쳐놓은 그물 문장들
 기다리는 초원식당
 

 주진천 거슬러온 꼬리의 내력
 읽을 수 없어
 동강동강 잘린 장어 몸 깊이만
 깻잎에 생강 올려 야무지게 넘기던 12시
 

 풍천이 파종해야 할 치어와
 내가 유예시킨 언어들이
 돌아오는 길은
 얼마의 바다와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할까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내장만 꿈틀
  잡념만 번식할 뿐
  결가부좌 튼 채 오지 않는 문장은
  씹고 씹어도 불판 위다
 

 <해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자식이 어버이를 모시고 함께 나들이하는 그런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효의 나라였습니다. 금산 하면 누구나 인삼을 생각할 것입니다. 먼 옛날 한 선비가 병든 홀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구하려고 산천을 헤매다 진악산 기슭에서 붉은 열매 3개가 달린 풀의 뿌리를 달여 드려 어머니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풀뿌리가 바로 인삼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주말에 “아버지 모시고 선운사 갔었지, “불판에 몸 구부러지는 장어 소금 뿌리며” 앉아 있습니다. 불판을 언어의 그물망으로 치환하여 자신이 써야 할 문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주진천 거슬러온 꼬리의 내력”을 물어봅니다. “얼마의 바다와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할까”를 고민하면서요. 장어의 고향 풍천은 치어를 바다에 파종하고 시인은 언어들을 유예 시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장어를 먹고 있지만, 시인의 뱃속은 잡념으로 들어차 있습니다. 시인이 찾고자 하는 문장은 선운사 지장보살처럼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죠. 장어를 씹고 또 씹으면서도 떠 오르지 않는 문장을 생각하다 이 시의 제목에 이르게 됩니다. 어쩌면 “시인의 길”도 허공에 거미줄 하나 쳐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며칠 있으면 정월 대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가정마다 대보름달의 미소가 늘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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