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한국인의 곁에 머물렀던 ‘병풍’ 다시보기…청목미술관 기획전시 ‘병풍 펼치다’
오랜 시간 한국인의 곁에 머물렀던 ‘병풍’ 다시보기…청목미술관 기획전시 ‘병풍 펼치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4.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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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한국인의 곁에 머물러 있었던 병풍을 다시 보는 전시회가 열린다. 병풍이 가진 본래의 기능인 가리개나 장식물의 역할을 초월해 병풍을 펼쳐 그 안에 가려졌던 그림과 글씨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병풍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간이다.

 (재)청목미술관이 21일부터 3월 10일까지 ‘병풍 펼치다’展을 연다. 미술관 소장품 중에서 병풍을 골라 7점을 선보이는데, 전시작품은 8폭 병풍 6점과 12폭 병풍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개 이상의 판을 종이 띠로 연결해 만든 것을 연결 병풍이라 하는데 8폭 병풍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림이나 글씨, 자수 등을 배접하여 나무 틀에 밑종이를 여러 겹 붙여 만든 판에 다시 붙이고 판들을 연결하여 세울 수 있게 만든 장황 형태다.

 병풍은 공간을 분할하고, 찬 바람을 막아 주며, 집안을 장식하는 가구와 같이 변신하며 다양한 역할을 했다. 또한 사람들이 복을 빌고 소원성취를 바라는 기원물로도 쓰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병풍을 평평하게 펼쳐 벽에 고정, 병풍의 기물로써의 기능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그재그로 접혔을 때의 공간감이나 입체감은 보다는, 병풍 그림의 회화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고자 한 것이다.

 전시되는 작품으로는 오른손 수전증으로 붓을 잡기 어렵게 되자 왼손바닥으로 붓을 잡고 엄지로 붓꼭지를 눌러 운필하는 악필법(握筆法)을 개발한 석전 황욱(1898~1992), 고아한 인품으로 한국서예의 독자적 경지를 이룬 강암 송성용(1913∼1999), 다섯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 붓을 감싼 채 글씨를 써내려가는 오담 임종성, 아름다운 고향의 사천과 정취를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소림 송규상 등이 있다.

석전 황욱 도연명의 귀거래사, 8폭 병풍, 1989년
석전 황욱, 도연명의 귀거래사, 8폭 병풍, 1989년

석전 황욱의 1989년 작인 8폭병풍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동진(東晋)시대 대표적인 은거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대표적인 한시작품이다. 귀거래사는 도연명이 현실을 깨닫고 관직을 사직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은 작품으로, 이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강암 송성용, 12폭 병풍, 1997년
강암 송성용, 12폭 병풍, 1997년

 강암 송성용의 12폭병풍에서는 한평생 올곧은 정신과 격조, 단아한 품격으로 살며 강직한 성품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이자 한국 서단의 거목(巨木)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오담 임종성, 묵죽도, 8폭 병풍, 1997년
오담 임종성, 묵죽도, 8폭 병풍, 1997년

 독학으로 서예를 익힌 오담 임종성의 작품은 힘찬 선과 좌우 균형이 잘 잡힌 서체, 그리고 중후하고 화려한 붓의 율동은 운필이 갖는 조형미를 잘 드러낸다. 직접 눈으로 본 실경을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소림 송규상의 작품은 맑고 투명한 수묵의 멋과 절제되면서도 담백한 기법이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어 수묵담채화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소림 송규상, 대둔산 전망도, 8폭 병풍, 2021년
소림 송규상, 대둔산 전망도, 8폭 병풍, 2021년

 김선남 청목미술관 학예실장은 “일반적으로 병풍은 그 용도와 위치상 뒤쪽에 배치되어 부차적으로 여겨지며, 그 존재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병풍의 글과 그림이 주인공이 되어 그 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 자체로 갖는 깊이 있는 이야기와 예술적 가치를 강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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