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
현금 없는 사회
  • 방극봉 전북은행 부행장
  • 승인 2024.02.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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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극봉 전북은행 부행장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진입하고 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모바일 결제 등 비현금 지급 수단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현금 결제는 상대적으로 줄었고 이에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도 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도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입을 가속화했다. 비대면 결제가 일상이 되면서 현금결제 비중이 낮아지고 QR코드나 각종 페이를 이용한 간편 결제를 선호하는 트렌드가 반영된 것. 심지어 실물 카드 없이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대부분의 결제가 가능한 시대이다.

 대표적인 현금 없는 매장은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지난 2018년부터 도입한 현금 없는 매장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매장 내 현금 거래를 줄이고 충전식 선불카드 활성화를 통해 ‘지불의 고통’을 줄여 준다는 것.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어떤 것을 소비하기 전에 미리 그 대가를 지불하면 그것을 실제로 소비할 때 거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지갑에 두둑하게 넣어 두었던 현금을 야금야금 쓰다보면 얇아진 지갑에 속이 쓰리고 상실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지불의 고통’이다. 지불의 고통은 돈을 지출하는 행위가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영역을 자극한다는 연구 결과에서 나온 단어로 스타벅스의 경우 충전카드가 지불의 고통을 없애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갑에서 돈이나 카드를 꺼내 눈앞에서 자신의 돈이 사라지게 되는 지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함으로써 식사 한 끼 값의 커피 한잔을 사 먹는 죄의식도 상쇄시켜 주는 것이다.

 편의점에서도 계산 시 발생하는 거스름돈을 고객의 계좌로 입금해 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고객이 점포에서 현금으로 물품을 구매하고 신용·체크카드나 모바일 현금카드를 제시하면 거스름돈을 연결된 은행계좌로 입금해준다. 점포 입장에서는 거스름돈을 별도로 보유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도 평소 잘 사용하지 않은 동전을 계좌로 바로 넣어주니 편리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금 없는 매장이 불합리하며 소비자의 거래 선택권을 박탈한다는 것, 또 현금의 결제기능이 과도하게 축소된다면 민간 결제업체의 시장지배력이 높아져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노년층이나 디지털 금융 소외계층 등 화폐 사용이 편한 사람들까지 시장에서 현금을 사용하지 못하면 화폐 유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더불어 스마트폰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증가로 요금 미납이나 서비스 제약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합법적인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며 스미싱이나 사칭 보이스피싱과 같은 사기에도 대비해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은 월급이 은행계좌로 자동이체 되지만 80~90년대만 해도 월급을 현금으로 노란색 봉투에 넣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노란색 마분지로 만든 얇은 봉투에는 한 달간 열심히 일한 직장인들의 노고와 땀의 무게가 더해져 월급봉투를 품고 퇴근하는 길은 벅찬 뿌듯함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 봉투에서 꺼낸 현금으로 꼭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던 그 시절 우리의 부모님들에게 지불의 고통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현금 사용량을 지금보다 더 늘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탈 현금화 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현명하고 계획 있는 소비와 지출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결제의 편리함은 높아지고 지불의 고통은 줄어들지만 그 결과 우리의 통장 잔액은 헐거워질 것이 자명하다. 새해부터는 소비습관에 뉴트로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현금지출이 심리적 스트레스는 쌓이겠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다. 지불의 고통에 비례해 통장 잔고는 알차게 쌓여갈 것이다.

 방극봉 <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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