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과거 방송에서 “마음과 몸은 따로 놀지 않는다.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도 들어봤고 “마음과 몸은 따로 논다.” 라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이러한 멘트를 접하고 마음과 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인간은 살면서 마음과 몸이 척척 잘 맞아 하나일 때도 있고 마음으로는 집안일도 깨끗하게, 먼지 하나 없이 살고 싶은데 실제 몸은 마음과 정 반대로 한없이 게을러져 누워만 있을 때 마음과 행동 사이에서 하나로 일치시키지 못해 괴로울 때가 있다.
이렇듯 마음과 몸은 둘로 나뉠 때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속마음은 그 사람의 언어나 몸의 표현에서 읽혀지는 것과 정 반대의 상황일 때도 많다.
예를 들어 한 스승에게 두 명의 제자가 있는데 첫 번째 제자는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이 진심이고 두 번째 제자는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이 아니라 스승에 대한 불만만 가득하다.
하지만 첫 번째 제자는 타고난 성격상 스승을 봐도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인사도 잘 하지 않는 반면 두 번째 제자는 스승을 볼 때마다 깍듯이 대하고 공경한다는 언어와 몸의 표현을 자주 한다면 스승이 봤을 때 첫 번째 제자는 본인에게 무관심하고 두 번째 제자는 본인을 공경한다는 믿음이 생길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제자는 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행동이 행해지지 않고 반대로 행동을 했을까? 사람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진심대로 행해지지 않을 때가 잦은 법이다. 데카르트의 상호작용론을 살펴보면 몸과 마음은 각각 독립적, 그 둘은 두뇌의 ‘송과선’에서 만나서 서로 영향을 준다고 했다.
혼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유기적으로 얽혀 사는 세상이기에 이 ‘송과선’에서의 만남이 여러 원인에 의해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그 타협 또한 자신의 의지이지만 예외로 송과선에서의 만남의 결과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상황도 우리는 살다 보면 맞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마음 심’적으로 당황하거나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는 상황이 되면 송과선에서의 합의대로 내 몸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사나운 맹견이 달려오면 마음으로는 “빨리 도망가야해”라고 외치지만 너무 무섭고 당황하여 발이 안 움직이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배우를 예로 들어보자 배우가 작품을 위해 카메라와 스텝들 앞에 서게 되면 공황장애를 겪거나 나도 모르게 극도의 긴장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됐을 때에는 평소에 친구들과 편하게 걷고 말하고 웃던 행동들이 카메라와 스텝들 앞에서는 평상시처럼 안되고 마음과 몸이 따로 놀며 송과선과의 합의는 무시되고 전혀 몸이 통제되지 않는다. 이럴 때 배우의 육체란 가장 무서운 원수가 되는 것이다.
배우는 원수 같은 몸이 아닌 가장 친한 벗이자 악기처럼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육체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하기에 이러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송과선의 합의를 완벽하게 이끌어 내기 위하여 배우는 주의집중 훈련을 한다.
주의집중 훈련은 배우의 마음과 몸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훈련법 중 하나이다. 일반인들도 검색을 통해 손쉽게 주의집중력 훈련법을 접하고 익힐 수 있으니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담대하게 마음과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주의집중 훈련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나아리 <전북영화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