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7> 차의 길 60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7> 차의 길 60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4.02.0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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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의「입학도설」 . 성리학의 기본원리를 도식화해 설명한 책.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32호

한가할 때면 가끔 도성 밖으로 나가

숲속의 귀인을 방문하였네.

샘물을 길어다 차 달이고

산 보느라 한참 두건 젖혀 썼네.

밝은 창엔 유난히 달빛이 밝고

빈방엔 저절로 티끌이 없다.

이곳에 그윽한 풍취가 있으니

이제부터 자주 오고 가려 하오.
 

위의 시는 권근(權近, 1352~1409)의 『양촌집』권8 「복재가 안양에게 준 시에 차운하여」 라는 글이다. 가끔 도심을 벗어나 전원을 찾으니, 숲속의 귀인은 누구일까. 차를 마시기 위해 샘물을 길어오고, 차 달이는 사이에 주변 풍경을 즐기는 이의 마음은 어떨까. 달빛에 비친 창이 밝은 것으로 보아 하룻밤을 묵어가는 모양이다. 정갈한 빈방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모양이다. 자주 오고 간다고 하니 이래저래 권근은 마음이 편안해진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마음자리는 가끔 힐링이 필요한 것 같다.

권근은 오형제 중에 넷째 아들로 어릴때 이름은 진(晉). 호는 양촌(陽村)이다. 아버지 권희(僖)는 검교정승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 정간공(靖簡公)이다. 어머니는 정승(政丞) 한양부원군(漢陽府院君) 문절공(文節公) 한종유(韓宗愈)의 여식(女息)이다. 이러한 가풍(家風)을 지닌 권근은 어린 시절 외가와 본가를 왕래하며 성장했다.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적 기초를 다졌다고 한다.

여말선초(麗末鮮初) 왕조가 바뀌는 시대에 살며 젊은 나이에는 고려, 40대 이후에는 조선의 체제 정비와 성리학의 학문적인 기초를 마련했던 인물이다. 그 배경에는 부친 권희와 형제 권화와 권충이 있었다. 부친은 태조 이성계와 친구 사이이며 원종공신에 임명되었고, 권희와 권충도 개국원종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권근 역시 태조 2년 9월, 검교 예문춘추관 태학사 겸 성균관대사성으로 관직에 복귀하게 된다. 권근이 출사하기까지 부친의 노력이 컸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이라는 두 왕조의 신하여서일까. 그의 『양촌집』권18 「징심암시서 澄心庵詩序」를 보면, “학문이 진실로 그 정당한 곳에 나아가고, 마음이 진실로 선한 일에 성실하면, 나아가서는 여러 사람과 같이 선을 할 수 있고, 물러나서는 도를 지킬 수 있으니, 자신의 출처로 인해 도에 결함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출처에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출사에는 시기와 의리가 있어야 하며 개인의 지조만을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처사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새 도성에 거처를 마련하고 눈 내리는 겨울에 차를 마시며 지은 시가 있다. 「눈 내리는 가운데 시를 지으며 …」 일부를 보면,
 

새 도성에 방을 빌려 집 걱정을 잊고

눈을 바라보며 시 읊고 차를 마시네.

병중에 한가로이 누워있으니

한적한 골목에 해가 기우네.

새하얀 흰 눈이 마을을 덮는데

새벽에 아이 불러 차를 달인다.
 

관직에 나아가 바쁘게 지내다 보니 병이 난듯하다. 집 걱정도 잊은 채, 새 도성 근처에 마련한 방에서 홀로 차를 벗하며, 아침저녁으로 차를 마시며 지은 조금은 쓸쓸한 시이다.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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