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0) 노희석 시인의 ‘이월의 변주곡 -가로등은 2월이다’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0) 노희석 시인의 ‘이월의 변주곡 -가로등은 2월이다’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4.02.0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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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의 변주곡 -가로등은 2월이다’

 

- 노희석 시인

 

하늘을 찌르는

전봇대가 1월이라면

고개

푹 숙이고 있는 가로등은 2월이다

사람들은

가로등 아래를 지나쳐 가면서도

가로등이 2월인 줄을 모른다

1월에서 건너 온 비둘기 한 마리

가로등 타고 앉아

하늘 한번 올려다보라며

가로등 머리를 쪼고 있다

별도 뜨지 않는 도심의 거리

어디 올려볼 하늘이 있냐며

비둘기,

시린 제 발등 혼자 녹이고 있다

가로등 발등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호호 손 녹이고 있는

봄꽃의 씨앗들은

안다. 가로등이 2월이라는 것을.

 

<해설>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

“1월에서 건너온 비둘기 한 마리”가 “시린 제 발등 혼자 녹이고 있다”고 하니 이제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나 봅니다. 벌써 갑진년에 들어 선지 한 달이 훅 지나갔습니다. 떨어져 나가는 한 달의 무게가 참 가볍게 느껴지네요. 지나가는 것은 이렇게 무엇이나 가벼운가 봅니다. 이월은 절기상으로 보면 봄의 문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봄은 그냥 오지 않고 2월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올 수가 있습니다. 시인이 “가로등은 2월이다”고 했는데 왜 2월이라고 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봇대를 1월이라”고 했으니 가로등은 고개를 삐쭉 내민 2자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고려 중기 천재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그가 다섯 살 때, 강 위에 뜬 백로를 보고 “누가 흰 붓을 들어 강 물결 위에 새 을乙 자를 썼나. 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흔히 시는 현상을 재발견하기도 하고 새롭게 발상도 합니다. 하나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시의 생명력도 달라집니다.

시인은 전봇대와 대비되는 가로등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2월을 떠올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엎드린 채 한 번도 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는 가로등에게 비둘기가 다가가 툭툭 치면서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엎드려만 있지 말고 별을 올려다보면서 꿈꿔보라”고 이야기 하지요. 하지만 도심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별이 뜨지 않는다는 것을 가로등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대신 가로등은 발등 아래에서 손을 호호 불며 녹이고 있는 봄꽃들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회색빛 하늘 아래, 꿈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가로등을 불러들여, 봄꽃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고개 숙이고만 있지 말고 2월처럼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면 봄이 온다고.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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