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은 나무를 살짝만 흔들어도 떨어진다
눈꽃은 나무를 살짝만 흔들어도 떨어진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4.01.3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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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영롱한 눈꽃, 얼음꽃은 찬란한 숲길을 만든다. 천년 주목 숲길의 나무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는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은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다. 향적봉은 해발 1,614m로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젊음을 한껏 과시하기 위해서도 겨울이면 꼭 한 번쯤은 나의 존재를 눈밭에 꿈을 심어놓고 온다. 7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주목을 보노라면 넉넉한 생의 흐름이 보이고 수화로 대화를 해본다.

눈꽃은 나무를 살짝만 흔들어도 떨어진다. 덕유산 상고대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서 나무 돌 등에 서리가 하얗게 얼어붙는 눈꽃송이다. 무서리, 수빙(樹氷), 수가(樹稼), 무빙(霧氷)이라고도 불리는데 서리, 얼음꽃이라 생각하면 된다.

향적봉 상고대는 상고대 위에 눈이 날려서 더 크게 상고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비가 온 다음 날 수증기기가 많은 상태에서 날씨가 추워지면 얼음이 붙어 큰 상고대가 만들어진다.

상고대는 얼어붙은 상태라서 잘 안 떨어지며 눈이 내리지 않아도 상고대는 산과 호수나 강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상고대는 빨리 없어지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올라가야 볼 수 있다. 내려오는 동안 제주 서귀포시 휴애리자연생활공원에 붉은 매화꽃을 카톡으로 보낸 후배가 있어 봄소식도 맞이했다.

상고대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눈꽃은 매일 고독하지만 꿈을 품고 사는 우리 집에서도 피어난다. 어두운 새벽에 꽃이 열리기 시작해서 아침햇살이 창문을 열면 어둠을 내쫓을 즈음 꽃은 떨어진다. ‘엔딩서포트‘라고 창문에 쓴 손가락 글씨도 희미하게 지워진다.

‘엔딩서포트’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게 동행해 준다는 의미다. 단절된 세대의 안부를 살피고 유류품 정리, 사망신고 등 사망 후 장례 처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갑자기 이 아름다운 봉사를 하는 사람에게 고마움이 가슴 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만든다. 갑자기 아파도 동행해 줄 가족이 없어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던 위험한 일이 있어서일까.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1755~1793)는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의 부인이다. 사치스럽고 호화스럽게 살았지만,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인하여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불운한 왕비를 한국 정치인이 왜 들먹였을까? 흥미로웠다. 왕비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 그녀를 향한 증오의 도화선이 되었다. 증오의 정치가 횡행하는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포용의 정치 리더십이 아쉽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마침 뮤지컬 공연이 2월부터 공연한다고 하기에 호기심이 더 자극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와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했다. 왕비로 재위하는 동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38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불운의 왕비였다. 1793년 10월 16일 콩코드광장 단두대에 의해 참수당했다.

처형당하기 전 밤사이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하니 얼마나 참혹한 밤을 견디었을까. 극심한 스트레스 공포와 슬픔은 화려한 사치로 국민에게 반역자로 몰리기까지 한 루이 16세의 왕비를 들먹였던 정치인은 신중하지 못했다.

‘말이 씨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시인은 감정이 요동치면 심장이 반응해서 마음의 색이 담긴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시가 현실을 예언한 시를 읽고 소름 끼쳤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시인 박정만(1946~1988) 정읍 출생, <종시(終詩)>전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시인이지만 삶과 문학이 함께 불우했다. 사망 1년 전의 시를 읽으면서 시와 접하는 일이 두려웠다.

사랑이여, 슬픈 일만 나에게 있어다오/ 바람도 조금 불고/ 하얀 대추꽃도 맘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그리운 꽃바람으로 정처를 정해다오// 세상에 무슨 수로/ 열매도 맺고 저승꽃으로 어우러져/ 서러운 한 세상을 건너다볼 것인가// <슬픈 일만 나에게 있어다오> 부문

나의 생도 상고대처럼 아침 햇살에 아름다운 꿈이 사라질 수 있겠다. 증오와 혐오의 관계를 떨쳐버리고 서리꽃처럼 영롱한 자태로 살아가도록 다짐해 본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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