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경 산문집 ‘우리는 서로의 나이테를 그려주고 있다’
나혜경 산문집 ‘우리는 서로의 나이테를 그려주고 있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4.01.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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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마당’에 대한 예찬

 “넓지 않아도 좋다. 단 한 평만 있어도 알뜰하게 가꾼다면 마당의 기능을 다할 것이다. 또 한 평만이라도 초록 빛깔로 채워진다면 집도 사람도 생기가 더 돌 것이다.”(「한 평이라도 좋아」중에서)

 코로나19 때 마당은 더 빛을 발했다.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을 때, 또 가족의 격리로 함께 격리해야 할 때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해도 마당은 바깥의 공간이 되었다.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산책이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시인은 이제 바깥으로 나가기 전 완충의 공간이 되는 마당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나혜경 시인의 첫 산문집 ‘우리는 서로의 나이테를 그려주고 있다(책만드는집·1만4,000원)’에는 마당을 예찬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시인은 인생 반환점이라고 생각하는 시기에 마당이 있는 집을 지었다. 아주 어릴 적 살았던 집도 마당이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어린 시절의 마당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듯하다. 시인은 자신의 마당에 눈에 익은 나무와 꽃을 하나씩 심기 시작했고, 점차 푸르름으로 그곳을 채웠다.

 그러던 어느 이른 봄날, 향 좋은 히아신스가 꽃을 피우는데 갑자기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래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냈다. 그림을 배우지 않았으니 제멋대로 그린 첫 색연필 그림인 셈이다. 그 후부터 그리고 싶을 때 하나씩 그렸고 이것은 곧 시인만의 취미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시인인데 글보다는 그림이 먼저였다. 그러다 집과 마당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림과 함께 묶어 산문집을 펴내면 좋겠다는 생이 들었고, 그 후 글을 쓰며 많은 시간 집과 마당에서 놀이를 해왔음을 깨달았다. 수를 놓고, 재봉질을 하고, 커피를 볶고, 목공을 하고,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고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매일 달라지는 마당에서 새로움과 경이로움을 선물 받고 기다림을 배웠다.  

 나 시인은 “새싹과 꽃봉오리와 단풍과 낙엽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며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고 끌어안아 준다”면서 “마당을 걸으며 덜컥덜컥 걸리는 감정도 삭힌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기에도 좋은 곳이다”고 말했다.

 색연필로 마당을 그린 어느 시인의 집 이야기에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을 맡기게 된 이유는 ‘당신도 편안하길 바라’는 시인의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일 터다.

 나 시인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91년 사화집 ‘개망초꽃 등허리에 상처 난 기다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담쟁이덩굴의 독법’, ‘미스김라일락’ 등과 시사진집 ‘파리에서 비를 만나면’을 펴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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