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을 위한 기준
선택과 집중을 위한 기준
  • 박대길 문학박사/전북민주주의연구소장
  • 승인 2024.01.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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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길 문학박사/전북민주주의연구소장

 언제부터인가 후백제와 관련한 지자체와 정치권의 관심과 띄우기가 구체화를 넘어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2002년 「역사 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후백제 역사 문화권’을 포함하는 관련 법 개정, 7개(전주·문경·상주·논산시, 완주·진안·장수군) 시군 자치단체가 ‘후백제 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조직하였으며, 시민사회단체로 ‘후백제시민연대’가 활동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 예산 확보 등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전주시는 ‘국립후백제역사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1조 5천억 원으로 향후 20년 동안 추진할 ‘왕의 궁원’ 프로젝트의 실마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후백제 역사 문화권의 중심’이 전주라는 사실은 세상 먹은 어린아이도 안다.

 그런데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선대(先代)가 살았던 고장으로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 일컫는다. 즉 조선 왕실의 본향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존재가 경기전이고 태조 어진이며, 우여곡절 끝에 경기전 안에 어진박물관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호남의 수도였던 전주를 중심으로 호남인은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에 처했던 조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이를 두고 충무공 이순신은 호남을 가리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었으면, 나라도 없다)라고 하였다.

 한편 전주 전북인은 임진왜란 당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본(唯一本)이 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다. 경상도 성주와 충청도 충주, 그리고 경복궁 안에 있는 춘추관사고에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이 일본군의 침략으로 순식간에 불에 타 없어져 버렸다. 그때 전주사고에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마저 지키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조선의 반쪽짜리 역사, 즉 선조 이전의 역사는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주에 사고를 설치하고 실록을 보관하게 된 배경은 여럿이지만, 그중의 하나가 바로 풍패지향이었다. 조선의 역사를 분장하여 지키는데, 조선의 본향을 빠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풍패지향 전주를 상징하는 경기전과 태조 어진, 그리고 전주사고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공간과 상징물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한다.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은 물론 지금은 유일본이 된 태조 어진이 어진박물관에 있고, 정유재란 때 불에 탔으나 복원한 전주사고가 경기전 안에 있다. 특히 유일본 조선왕조실록으로 전주 전북인이 지켜낸 전주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버젓이 존재한다. 이처럼 역사성과 상징성이 뚜렷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보는 물론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 공간과 상징물이 전주에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기억과 기념은 겨우 요식행위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할 뿐 아니라 그다지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반만년의 역사라고 한다. 반만년 역사에서 어느 하나 가벼이 볼 것이 없지만, 현재의 우리가 그리고 미래의 우리와 후세가 기억하고 지키고 계승해야 할 역사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가려야 한다. 지난 역사에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를 지키고 계승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이다.

 경기전과 태조 어진, 전주사고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상징적 공간과 존재 못지않게 우리가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전쟁에서, 우리의 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냄으로써 오늘의 우리가 볼 수 있고,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역사성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난 역사와 고귀한 희생으로 지켜낸 역사 중 어느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느냐는 분명하다.

 박대길<문학박사/전북민주주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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