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9) 김병연 시인(황병국 역)의 ‘요강’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9) 김병연 시인(황병국 역)의 ‘요강’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4.01.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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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강’
 

 - 김병연 시인(황병국 역)
 

 네게 힘입어 깊은 밤 사립문 번거롭게 아니하고

 사람과 이웃 되어 침실을 지키게 하노라.

 취객이 널 가져다가 단정히 무릎 꿇고

 교태를 부리는 어여쁜 부녀자 너를 깔고 앉아 살며시 옷을 걷누나

 단단한 몸뚱어리는 구리로 된 산과 같고

 “쇄-”하고 떨어지는 소리는 폭포를 닮았구나

 공이 가장 많기로는 비바람 치는 새벽이요

 은밀히 성정(性情)을 기르고 사람을 살찌게 하도다.

 

 <해설>  

 조선시대에 시선(詩仙)이라 일컫던 난고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은 본명보다 평생 삿갓을 쓰고 바람처럼 떠돌아 김삿갓[金笠]으로 불렸다. 이 외에도 대기인(大奇人), 대광인(大狂人), 대철인(大哲人), 대주가(大酒家), 대걸인(大乞人) 등 여러 별명을 얻었을 만큼 개성이 넘치는 시인이었다. 

 그는 당시 선비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파격적인 시를 썼다. 그래서 보수 선비들의 ‘음풍농월(吟風弄月)’을 깨고 일상적인 삶을 시의 소재로 삼아 거침없이 욕을 뇌까리고, 양반을 능욕하며, 서민들의 아픔을 위무하는 호탕한 시를 썼다. 

 요강은 요즘으로 치면 오줌통이다. 한 밤중에 멀리 떨어진 뒷간을 가기 번거로우니 “사람과 이웃 되어 침실”에 들여놓고 “깊은 밤 사립문 번거롭게 아니하고 볼일”을 보는 편리한 살림살이 중 하나였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요강 앞에서는 “단정히 무릎 꿇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태를 부리는 어여쁜 부녀자”도 요강 앞에서는 “너를 깔고 앉아 살며시 옷을 걷어 내릴” 수밖에 없다.

  요강의 “단단한 구리의 몸뚱어리”에서 “쇄-”하고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높은 산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닮았다고 한다. 밤새 고였던 오줌이 나오는 새벽이면 “비바람 치는”소리로 쏟아진다. 그래서 요강의 미덕을 예찬하되 “은밀히 성정(性情)을 기르고 사람을 살찌게 하는 존재”라고 했다.

  문득, 새벽닭 울음에 잠을 깨 새벽의 푸른 어둠을 더듬어 요강을 찾던 그 시절 그때가 그립다.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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