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늘어나는 공황장애
불확실성의 시대, 늘어나는 공황장애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4.01.25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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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갑자기 가슴이 미칠 듯이 뛰고 어지럽고 숨이 막혀와 죽을 것을 공포가 발생하여 응급실은 찾은 A씨는 MRI, 심전도 등 온갖 검사를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와 단순히 ‘신경성’인 것 같은 이야기만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발작성 증상은 수시로 예고 없이 찾아왔고 또다시 응급실을 찾는 소동을 겪었으며 이제는 이런 증상을 언제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혼자 집이나 밀폐된 공간에 있지 못하거나 누군가 도와줄 사람 없이는 외출도 꺼리는 상태가 되었다고 호소하였다. A씨는 전형적인 공황장애를 앓는 상태로 판단되었다.

유명 연예인의 투병고백과 방송매체를 통해 최근 많이 알려진 공황장애는 위에 기술한 증상과 같이 전혀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할 상황이 아닌데도 숨 막힘, 질식감,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의 신체증상을 경험하면서 이와 함께 죽을 것 같은 공포감, 미치거나 기절할 것 같은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가장 극심한 형태의 불안장애를 말한다.

주요 증상을 보면 먼저 숨 막힘, 가쁜 호흡, 심한 가슴 두근거림, 발한, 떨림, 흉통, 현기증이나 기절할 것 같은 느낌 등의 신체증상을 주로 호소하는데 이 때문에 혹시 중풍이나 심장병 같은 큰 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보통 이런 신체증상과 함께 “이렇다 죽는 것은 아닐까?”,“이렇다 미치는 것은 아닐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황발작을 경험하면 도움을 받지 못할 텐데…….”, “지난번에 버스를 타다 공황장애를 경험했으니 버스를 타면 또 발작이 올지도 몰라.”하는 생각의 변화가 오고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흔히 광장공포증을 동반하게 된다.

그래서 심한 공황장애 환자들은 집 밖의 생활을 포기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불안을 잊기 위해 술에 의존하는 알코올 중독의 문제를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가장 주목을 받은 의견은 인지오류모델이다. 인지란 어떤 외부의 자극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련의 생각의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공황장애 환자는 사소한 스트레스나 대인관계의 불쾌감, 무의미한 비특이적인 신체적 자극을 과대 해석하거나 파국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소한 스트레스로 불안감을 느껴 ‘가슴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불현듯 ‘심장마비의 전조증상이 아닐까’하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이 때문에 또다시 불안해져 점점 증상의 강도가 높아져 파국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불안을 야기하여 실제 심장마비가 오는듯한 고통을 경험하는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조기진단을 받으면 비교적 치료가 잘 되는 병이다. 치료는 공황발작 자체를 막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공황장애 환자가 최근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진료데이터에 따르면 공황장애 진료 환자는 2017년 13만8천736명에서 2021년 20만540명으로 44.5%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1년 기준 남성이 8만9천273명으로 4년 전보다 38.1%, 여성이 11만1천267명으로 4년 전보다 50.2% 늘어났다. 환자의 연령대별 구성비를 보면 40대가 23.4%로 가장 많았고 50대(19.2%), 30대(18.3%)순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공황장애는 성인 100명당 3~4명이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인데도 대부분 환자들은 병명도 모른 채 ‘그냥 신경성인가 보다’하면서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다. 평균 25세에 발병하지만 질환을 알지 못하고 뒤늦게 40대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공황장애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요즘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혼란스런 국내정치,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 불황, 치솟는 물가와 금리, 저출산 등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끝없는 경쟁과 스펙 쌓기와 취업에 지쳐가는 젊은 세대와 점점 경쟁에서 밀려 존재적 불안을 느끼는 중년 세대, 먹고살기 바쁜 자식들 뒷바라지에 따뜻한 노후를 만들지 못하고 노화로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노년층 등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이런 거창한 담론까지를 말할 수는 없겠으나 현실이야 어떻든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은 길거리나 버스 같은 안전한 장소도 공황이 밀려오는 죽음의 장소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미래를 위한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한 철학자의 격언처럼 자신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정신건강과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기억할 때이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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