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56> 차의 길 59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56> 차의 길 59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4.01.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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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집(簡易集), 최립의 시문집(1631년 간행)

  눈 녹인 물로 차를 대신하니 차 끓일 필요 없고
  우물물은 혼탁하여 아교로도 맑게 할 수 없네,
  지나치게 깨끗함은 요리에 적합지 않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물병 가득 채우려고 했던 일이 부끄러운 줄 언뜻 깨달았네,
  심한 갈증에 생각만 해도 목젖이 촉촉한데
  너무 차가워서 배속에서 탈이 날까 두렵네,
  우가장의 금주 원칙을 괴이하게 생각지 마오
  술 깨어 물 달라고 하인들 들볶을까 해서라오.
 

  위의 시 「우가장 牛家莊」은 간이(簡易) 최립(1539~1612)이 1594년 명(明)에 주청사(奏請使)로 갔을 때 지은 시로 『간이집』 권7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17세에 진사와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561년 식년시 문과 갑과에서 장원하였다. 1586년 이문정시(吏文庭試)에서 장원하여 선조임금이 한직을 돌던 그에게 종2품 가선대부를 하사하였지만, 한미(寒微)한 출신이라는 사대부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종3품인 장례원 판결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조선 중기 최고의 문장가로 외교문서 작성에 능력을 인정받아 임진왜란 중에 명나라에 전쟁의 위급함을 알려 도움을 청하는 주청사로 가기도 한다. 당시 문인들과의 교유를 통해 많은 시와 산문을 남긴 최립의 문장은 차천로(1556~1615)의 시와 한호(1543~1605)의 글씨와 함께 ‘개성의 문예삼절(文藝三絶)’로 불린다.

  위의 시는 해학적인 글로 깨끗한 물이 차를 대신하여 차의 맑음을 비유하고 있다. 눈 녹인 물이 차를 대신하니 차를 끓일 번거로움이 없고, 흐릿한 우물물은 맑게 할 수 없어 눈 녹인 물을 병에 넘치게 담으려 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는 물을 사람의 도리에 비유한 것으로 넘치면 도리어 일을 그르치며 지나치게 깨끗함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으로까지 해석이 가능한 내용이다.

  즉 『주역』에서 “하늘의 도는 가득 차면 허물어뜨리고 겸허하면 더해 주며, 땅의 도는 가득 차면 변화시키고 겸허하면 계속 흘러가게 하며, 귀신의 도는 가득 차면 재앙을 내리고 겸허하면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차면 싫어하고 겸허하면 좋아한다.”라는 이치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까 싶다.

  우가장은 샘물이 너무 나빠서 마실 수가 없기에 눈(雪)을 가져다 갈증을 달래려 하면서 소동파(蘇東坡)의 「급강전다(級江煎茶)」에서 차운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갈증을 해소하지만 실제로는 차가워 배탈이 날 수도 있다며 말미에 우가장의 금주의 원칙은 다 이유가 있다고까지 한다.

  그는 승려들과 교유도 각별했던 모양이다. 억불(抑佛)했던 조선 중기의 상황을 볼 때 어려운 일이지만 사찰을 자주 찾은 것 같다. 옛일을 회상하며 지은 시 「담란에게 남겨주다 유증담란(留贈曇蘭)」이다.
 

  처마 사이 빈틈으로 산 달이 들어오고
  방은 마냥 고요한테 블등 하나 대롱대롱,
  지팡이 짚고 몇 번이나 나섰던고
  뜨거운 차 마시면서 잠도 잊었다네,
  미타전의 옛일을 추억한다면
  선정(禪定)에 든 담란 스님 모습 잊히리까. 

  “지팡이 짚고 몇 번이나 나섰던고” 라는 문장으로 보아 담란 스님이 거처하던 절을 자주 들렸던 모양이다. 미타전에서의 추억과 사찰에서 마신 차가 그리운 듯하다. 그리운 시절은 참으로 아름다운 법, 그 속에 차가 있어 더욱 즐거웠을 것이다.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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