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8) 김우식 시인의 ‘강진에 가면1’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8) 김우식 시인의 ‘강진에 가면1’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4.01.2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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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에 가면1’

 

 - 김우식 시인

 

 강진에 가면 눈 속에 동박새가 보이는
 여인을 만나
 가우도 다리 위를 넘어오는
 붉은 동백의 꿀 냄새를 맡고 싶다
 

 너를 기다린다는 것은
 동박새의 심장에
 촛불 한 자루 밝히는 일인 줄은 안다
 체온 가진 것들의 그리움을
 도려내는 일인 것쯤은 안다
 

 괜히 울어도 보고
 검은 물 밑바닥에 고여 있던 어둠이
 몸을 뒤채며 청잣빛 비늘로
 깨어나는 순간을 보고 싶다
 뱃고동 소리가 채 물러나지 않은
 꼭두새벽 미명을 팽팽하게
 일으켜 세우고 싶다
 

 사뭇 적요해진 시선으로
 강진 들판에서 배어드는 바람 속에
 물에 젖지 않는 동백향
 나는 그 향기에 젖고 싶은

 

 <해설>

 강진의 봄은 유난히 일찍 찾아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저자는 전라남도 강진을 제1장 절로 삼았습니다. 그는 “한반도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다는 강진의 하늘빛은 언제나 맑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청색의 원색이다.

  남도의 봄빛을 보지 못한 자는 감히 색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며 강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습니다. 청춘에 목이 부러진 선홍빛 동백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번 쯤 주어서 하트 모양도 만들어 보고 초록 잎사귀에 듬성듬성 올려놓아 보기도 했을 겁니다.  

 겨울 한복판인 지금 강진에 가면 “눈 속에 붉은 동백이 피고, 꿀 냄새를 좇는 동박새”가 보이고, 겨울의 정취가 물씬 풍기나 봅니다. 강진 가우도 푸른 바다를 건너온 “붉은 동백의 꿀 냄새”가 체온을 가진 생명들을 깨우고, “동박새의 심장에/ 촛불 한 자루”가 아련한 그리움처럼 세상을 밝혀줍니다. 

 꿀 냄새 머금은 붉은 동백향에 “검은 물 밑바닥에 고여 있던 어둠이/ 몸을 뒤채며 청잣빛 비늘”로 깨어나고, “뱃고동 소리가 채 물러나지 않은/ 꼭두새벽 미명”이 팽팽하게 살아납니다. 바다를 건너온 동백향을 품은 바람이 “강진 들판”에 배어듭니다.  

 붉은 동백꽃이 피는 강진, 청잣빛 비늘이 번쩍이는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이 적요한 겨울에.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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