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풍경을 달 거다
멋진 풍경을 달 거다
  •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 승인 2024.01.18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고 정신승리 하려는 국방부 장관. 얼어붙은 남북 관계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무력한 대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처구니없는 10.29 이태원 참사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부조리, 맥락 없는 자유를 내세워 부추기는 양극화, 끝없이 하락하는 경제지표, 야당 대표 테러를 대수롭지 않게 구렁이 담 넘듯 넘기려는 사회.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르는데 정말 고생했는데 순식간에 날개 부러져 추락하는 건가. 이런 역사적 퇴행으로 생긴 모멸감 속에서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겨울은 작년에 비해 푸근하지만, 여러모로 더 춥다. 불쾌해서 피하고 싶은 것들이 더 늘었다. 미술판은 이런 시류를 감당하기에는 허약하다. 그래서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이 멈추어도 다시 일어서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는 미술인으로서 예술의 가치와 힘을 믿고 있지만, 시절이 하도 어수선하다 보니 미술 담론들이 궁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무력감 속에서 미술 얘기가 망설여 지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넋두리 같은 독백을 할 거다. 필자는 “허구한 날 멍 때리고, 하루에 30쪽 책을 즐기고, 영감(靈感)이 오면 그림을 그린다. 이게 맨날 필자가 하는 일 같지 않은 일이다.”

 마냥 즐거운 창작은 불행히도 인생의 전반부에 막을 내린다. 창작의 즐거움 대신 남들의 매서운 시선과 자의적 기준이 남긴 상처들이 쌓인다. 그것을 이겨낸 사람만 살아남아서 창작활동을 하고, 이 특정한 사람을 예술가라 칭한다. 이들은 창조가 주는 즐거운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작업실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니, 보내야만 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격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섬 같은 공간. 속도를 늦추고 질주하는 관성이 멈추는 곳에서.

 왜 그리는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것들은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는 것을 알지만, 주제 없는 표현은 공허하고 변화없는 생산은 맹목적이기에 시시포스(Sisyphos)의 천형처럼 계속 질문한다. 미궁 속에서 탈출구를 찾기보다는 미궁 자체를 즐기는 게 숙명이다. 그래도 작품을 마무리해서 서명하고 낙관할 때는 세상을 통째로 얻은 것처럼 희열을 느낀다.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추상적 이론이나 사변적 논리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자는 지식의 한계를 밝히면서, ‘말로써 나타낼 수 있고 지식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사물에 국한된 것이다. 도를 깨달은 사람은 사물의 시작이나 끝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모든 논의가 멈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도 ‘말로 할 수 있다면 왜 그리는가?’라고 술회한 바 있다. 하지만, 둘 다 반쪽 진실이다. 미술가는 최소한의 언어적 개념이 있어야 창작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개념이 있어야 작품의 깊은 안쪽에서 본질을 발견하고 의미를 잡아낼 수 있는 거다.

 지금 창밖에는 꽃잎보다 가벼운 눈이 내리고 있다. 저 눈도 쌓이면 무거워지는 법. 무게 없는 생각들도 쌓이면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털어내야만 젖지 않는다. 미술에 있어서 개념은 쓰다 버려야 한다. 흡족하지 않은 개념들, 필자의 변화를 담을 수 없는 정체성도 지워야 한다. 중심을 가지되 가볍게 살기 위해 내일도 작업실의 즐거운 고통을 즐길 것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가볍게 흔들리는 물고기가 달린 풍경(風磬)은 절집에서 공부하는 수행자가 눈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잠들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올봄에는 연석산우송미술관에 멋진 풍경을 달 거다. 마음은 늘 깨어 있어야 하니까.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지든갤러리, 미술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