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떼어놓기 어려웠던 에딘버러 축제 ②
발을 떼어놓기 어려웠던 에딘버러 축제 ②
  •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1.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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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에딘버러로 가는 버스가 달릴 때 북스코틀랜드는 자갈, 바위, 말라죽은 나무와 야산이 연이어 시야에 들어왔으며, 쌀쌀한 바람 속에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산동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석탄을 캐느라 시커멓게 파헤쳐진 산 밑에는 산뜻한 신형 주택이 오붓이 들어앉은 마을이 있고, 마을 근처 새파란 잔디 위에는 온 동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요란한 함성은 북구의 정막을 깨는 듯했다.

손님을 가득 태운 버스가 에딘버러 시내 한복판에 멈췄을 때 바삐 서둘러대는 사람들에게서 열띤 축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으며, 발을 떼어놓기 어려울 정도의 인파를 보며 에딘버러 축제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이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이에 걸맞지 않게 이곳까지 와서 궁상스럽게 호텔 대신 유스호스텔을 찾는 내 처지가 몹시 안타까웠다. 걱정한 대로 유스호스텔은 초만원이었고 빈방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실망이 컸지만, 다행스럽게도 행사 도우미들의 도움으로 며칠 머물 수 있는 가정을 찾을 수 있었다.

 축제 내용 중 음악과 연주 프로그램은 내가 살고 있는 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보지 않기로 했고, 스커트를 입은 군대의 분열식으로 유명한 타투(Tatoo)를 비롯해 에딘버러 고유의 것을 보기로 했다. 타투는 무엇보다 스코틀랜드의 자연과 생활 정서를 잘 나타내주는 듯했다. 그리고 인도, 캐나다 등을 비롯한 영연방 여러 나라에서 초청되어 온 악단이 찬란한 오색 불빛 아래서 행진하고 있었는데, 관중에게서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 소리는 멎을 줄을 몰랐다.

 밤이 되면 매일 타투를 보기 위해 좁다란 길을 따라 줄을 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의 경쾌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구경이 끝났을 때 폭포수같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진풍경을 이루고 있어, 북구의 고도(孤都) 에딘버러는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곳은 아닌 듯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낮에는 심한 더위 때문인지 좀 한산하다가도 서늘해지는 저녁이 되면 축제가 본격화되어 광장과 거리는 온통 젊음과 모험과 낭만으로 가득 찼다. 잘 조화된 오색의 조명으로 곳곳이 선경을 이루는가 하면, 재즈와 클래식 선율에 맞추어 빛을 뿜어대며 춤을 추는 분수와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는 소음으로 가득 찬 댄스홀 등도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도시의 이모저모를 구경하는 동안 연이은 계곡·동산과 함께 굴곡이 심한 에딘버러 주위를 보게 되었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주택에서는 도시민들의 안정된 생활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수학 천재들만 다닌다는 학교를 비롯해 특색을 지닌 공공기관을 볼 수 있었고, 바다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항만에서 유유히 흐르는 바닷물과 해변 잔디에 지은 어부들의 오두막집들은 북구의 적막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에딘버러를 수호해 주고 한층 돋보이게 하는 장엄한 ‘에딘버러 성’ 정상에 오르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에 오른 경험이 있는 나에게도 쉽지는 않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에딘버러 시가지와 한적한 항만의 시퍼런 물은 여행자의 마음을 정숙하게 했다. 그리고 투쟁의 인생사는 북구의 고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잔인무도한 인간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큼직한 대포가 성 가장자리에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제1·2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한 영국 군인들의 이름이 기록된 두꺼운 전사자 명부(戰死者名簿) 옆에 웅장한 고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명록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책장을 아무리 넘겨봐도 한국인의 이름이 없는 것이 아마 내가 그곳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인 듯해 조그마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에딘버러에 머문 마지막 날 우연히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나 볼 수 있는 ‘자유 연사들’이 열변을 토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약 10여 명이나 되는 연사들이 정치·종교·사상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가 하면 청중들은 자신들의 질문에 답이 시원치 않으면 야유를 보냈고, 그래도 후련치 않으면 질문자가 단상에 올라가 다시 열변을 토하는 이상야릇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끝으로 다사다망했던 그간의 에딘버러 생활을 묵묵히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며칠을 같이 지내면서 정이 든 때문인지 새벽 일찍이 버스 역까지 배웅을 나온 주인 할머니·할아버지와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오르자 런던행 직행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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