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에 대한 헌사’
- 김경윤 시인
어린 시절 고향마을
큰댁 텃밭머리에서
할머니처럼 반겨주던 늙은 팽나무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푸르고 넓은 잎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요
홍점알락나비를 부르고,
저녁 때까치 울음을 부르고,
달콤한 열매가 노랗게 익고 있어요
아직도 내 손가락에 남아 있는
알록달록한 때까치 알의 따뜻함이라니!
팽나무 잎에 세 들어 살던
애벌레가 번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는 동안
팽나무가 들려준 이야기는
살아 있는 것들은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날개를 가질 수 있다는 나비의 우화
어린 시절 고향마을
큰댁 텃밭머리에서
생명의 신비를 처음 가르쳐 준 팽나무.
세상에 와서 처음 만난
나의 스승이에요
<해설>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면 팽나무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추억의 한 가운데에 팽나무의 “푸르고 넓은 잎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것이고요.
팽나무가 “홍점알락나비를 부르고,/ 저녁 때까치 울음을 부르고,/ 달콤한 열매가 노랗게 익고 있”습니다. 팽나무의 품에 생명체들의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팽나무에는 홍점알락나비 외에 수노랑나비, 흑백알락나비, 왕오색나비, 뿔나비가 팽나무를 먹이로 살다가 애벌레가 팽나무 낙엽에서 동면하니 온 생애를 팽나무에 의지하는 셈입니다.
팽나무 품에는 “알록달록한 때까치 알의 따뜻함”이 서렸고, 품 안에서 생명이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날개를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날개를 얻은 생명체는 팽나무의 품을 떠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평화로운 팽나무 그늘을 떠나 온 것이네요.
시인이 팽나무는 모든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 준 최초의 스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의 말처럼 고향에 가서 팽나무 그늘에 앉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까닭은 팽나무가 우리에게 신비를 가르쳐 준 스승이라 그런가 봅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