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59> 겨울에 자주 마시던 자주(煮酒)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59> 겨울에 자주 마시던 자주(煮酒)
  • 이강희 작가
  • 승인 2024.01.14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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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얼고 겨우내 오던 눈이 쌓인 길은 삼한사온으로 질척였었다. 그게 우리가 알던 겨울이었다. 2023년 12월 중순 이후 연이은 한파와 눈이 주기적으로 오면서 겨울다운 겨울을 지내고 있는 게 최근의 겨울의 모습이다. 이런 날씨에 소주나 막걸리를 기울이며 따끈한 국물을 안주 삼아 술 마시기를 즐기는 게 주당들의 모습일 거다. 그런데 안주로 나오는 따뜻한 음식 외에도 술을 따뜻하게 데워마시는 걸 즐기던 게 예전부터 있던 이 땅의 모습이었다.

일반적으로 술을 데워마시는 것을 일본의 사케를 연상하며 그들의 풍습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짧은 ‘앎’이다. 일본의 풍습이 아니라 세계의 주당들이 추위를 이겨내려고 술을 데워 마신다. 유럽에서도 포도주에 여러 과일과 향신료를 넣어 끓이는 뱅쇼가 잘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데운 술을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 더불어 17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하는 ‘주방문’에서는 술을 중탕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난로에 언 몸을 녹이면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는 추위를 잊게 만든다. 이에 못지않게 데워진 술을 마시며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이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데워마시는 술을 당시에는 ‘자주(煮酒)’라고 불렀다.

지금의 추위와는 격이 다를 뿐 아니라 옷을 비롯해 겨울을 지내는 환경이 열악했던 예전의 환경에서 자주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또 다른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자주는 주로 청주를 끓여 마셨는데 이는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던 양반들의 생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삼베로 만든 옷을 껴입었던 서민들은 술을 짜고 남은 지게미와 물을 섞고 한약재를 넣어 끓이는 모주를 만들어 마셨다. 모주는 한약재가 들어가다 보니 술이라기보다 건강음료로 역할을 했다.

냉장 기구의 발달로 언젠가부터 안주는 따뜻하더라도 술을 차갑게 해서 마시는 것이 일상화되었지만 원래 술은 기호에 맞게 마시는 것이다. 술을 데워마시면 좋은 점은 데우는 동안 알코올이 날아가서 덜 취할 수 있다는 점과 향기 성분이 활성화되어서 음식과 곁들일 때 풍미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데워마시는데 사용되는 술을 막걸리나 청주에만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향이 좋은 단식증류로 만든 소주나 포도주, 브랜디 같은 술을 데워마셔도 특유의 향미를 더욱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주당들이 술의 맛이나 향을 자세히 느끼고 싶을 때에는 보통은 술에 물이나 얼음을 넣어서 세세히 느끼려고 시도한다. 미지근하게 데우는 것은 겨울에 술을 즐기는 나름의 별미이면서도 향을 활성화시켜 즐기려는 주당들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술은 차갑게든 따뜻하게든 어떤 모습으로 즐기든 자기 취향대로 자유롭게 즐기면 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보다가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술 음용을 찾으려는 노력은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야 하지만 과음만은 조심해야 한다. 나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함은 물론이고 주변에게도 추태를 보이니까 말이다.

글 = 이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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