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주간보호센터에서 행복한가
노인은 주간보호센터에서 행복한가
  • 박은숙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 승인 2024.01.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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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숙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br>
박은숙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부모는 자녀를 정성 들여 애지중지 기르지만, 자녀는 부모의 노후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여 자책감이 들게 마련이다.

재가노인복지시설 중 주·야간보호란 부득이한 사유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허약한 노인과 장애 노인을 주간 또는 야간 동안 보호 시설에 입소시켜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이들의 생활 안정과 심신 기능의 유지·향상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서비스이다. 주간보호센터는 ‘노치원’이라고도 부르듯이 낮에 노인을 케어하고 있다. 노년기 삶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최근 주간보호센터를 참관할 기회가 주어졌다. 주간보호센터를 참관하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팀의 일과는 오전 9시에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센터에 들어오자마자 졸린다고 하였다. 직원은 할아버지에게 주무시겠느냐고 묻곤, 사무실 한쪽에 위치한 바닥이 따끈한 오픈된 온돌방으로 모셨다. 할아버지는 외투를 벗고 누우셨고, 직원은 이불을 덮어 드렸다. 어깨를 다독이는 직원의 모습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바람들어가지 않게 어깨를 다독이던 모습과 똑같았다. 할아버지는 코를 골 정도로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층에는 편안한 의자가 놓여 있었고, 앞쪽 두 줄에는 여성 어르신, 뒤쪽 두 줄에는 남성 어르신들이 앉아 있었다. 어르신들은 강사님과 함께 음악에 맞춰 가벼운 운동을 하였다. 보행기에 몸을 의지하고 늦게 도착한 할머니를 직원이 자리까지 안내하였다. 직원은 두 팔을 올려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할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뒷걸음으로 자리로 안내했다. 할머니 역시 웃음을 지으며, ‘고마워요.’를 반복하였다. 너울춤은 할머니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외롭게 지낼 노년기를 이렇게 환영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직장일로 바쁜 우리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우리 부모님을 이렇게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있음이 한없이 고마웠다. 나는 이토록 열렬히 사람을 환영한 적이 있었는가 반성도 되었다.

노래 강사가 오더니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며, 국악으로 다져진 특유의 창법으로 인사말을 크게 건네며 한분 한분과 악수를 하였다. 강사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회고담과 함께 노래가 이어졌다. 어르신 몇 분은 마이크를 꼭 붙들고 애창곡을 목놓아 불렀다. 노래방이라면 높은 점수가 나올 실력이었다. 한 할아버지는 장교 출신답게 목소리가 우렁차고 흥에 겨워하셨다. 그런데 나에게 손짓을 하며 말씀을 하시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이를 본 직원이 재빨리 오더니 앞에 있는 보행기를 가져다 드렸다. 바로 옆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보행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직원의 맞춤형 서비스가 놀라웠다. 어르신의 보행기에 의지해 걷는 모습과 젊은 시절의 기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점심 준비를 위해 식탁과 의자를 깨끗이 닦았다. 센터의 위생 관념은 매우 철저했다. 우리 팀은 마스크 착용은 물론, 매번 손을 깨끗이 씻었다. 식탁에는 이름표, 대상자마다 다르게 앞치마나 턱받이가 놓여졌다. 어르신들은 보행기로 또는 휠체어를 타고 또는 걸어서 의자에 착석했다. 물론 자리에 앉으실 때 부축이 필요했다. 포크를 이용하는 분과 젓가락을 이용하는 분, 밥 대신 죽을 드시는 분을 직원들은 다 알고 있었다. 밥의 양까지도 개인 맞춤형으로 담았다. 어르신들은 노년의 또 한 끼를 맛있게 드셨다.

운동 시간에는 보행기에 의지하여 바닥 그려져 있는 화살표 방향으로 걷기를 하였다. 팔은 보행기에 의지한 채였지만, 줄을 지어 걷는 모습에서 에너지가 느껴졌으며, 경보 경주를 하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스테이션에서 할머니 손등에 면봉으로 물약을 발라 드렸다. 손등과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약을 더 발라야 하는지를 여쭈었다. 우리 자녀들이 일하는 사이에 누군가는 우리의 어머니를 이렇게 정성스레 돌보고 있었다.

윷놀이를 위해 식탁을 일렬로 배열하고 식탁 위에 다양한 색깔의 작은 담요를 깔았다. 한 테이블에 한 팀씩 남녀가 팀을 구성하였다. 4팀이 각각 빨강, 노랑, 녹색, 파랑 말을 사용하였다. 윷을 던지는 테크닉에서 어르신들의 삶의 경륜이 묻어났다. 조용하기만 하던 여자 어르신의 윷 던지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말을 달을 때에는 자신의 팀이 앞서기 위한 전략을 정확하게 구사하였다. 윷을 던질 때마다 희비가 교차하고, 윷판은 어느새 떠들썩해졌다. 윷놀이가 끝날 즈음 어르신들의 얼굴은 뭔가를 해낸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센터 관계자들도 윷놀이에 심취해 있는 것이었다. 동네 잔칫집 같았다. 우리 부모님들 노후를 마음으로 보살펴 주는 센터 관계자들이 천사처럼 보였다.

삶의 질은 경험과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와 만족도로 정의한다. 노인의 삶의 질 척도는 일반적으로 통제성, 자율성, 행복감, 자아실현의 4영역이며 총 19문항으로 측정한다. 통제성에는 ‘나는 소외된 느낌이 든다(부정 문항).’, 자율성에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

자아실현에는 ‘나는 요즘 활력이 넘친다’ 라는 항목이 있다. 행복감에는 ‘나는 매일매일이 기대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즐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가 포함되어 있다. 오늘 주간보호센터에서 생활한 어르신들은 이 항목들의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 자녀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안 부모님들은 주간보호센터에서 존중과 보살핌을 받으며 노년의 또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박은숙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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