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상상하기 (30) - 목수가 되고 싶었던 아이
작은 학교 상상하기 (30) - 목수가 되고 싶었던 아이
  • 윤일호 장승초 교사
  • 승인 2024.01.11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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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만든 지헌이

 ■ 지헌이와 만났던 인연

 장승에서 만났던 아이들 가운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몇 아이가 있다. 그 아이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었는데 2015년에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지헌이는 아이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다.

 2010년 12월, 날이 제법 추운 날이었다. 전주에서 장승초 학생 모집을 하는데 한 엄마가 아이 둘을 보내고 싶다고 찾아왔다. 2011년에 6학년, 2학년이 되는 아이들이었다. 그때는 학생 모집을 하고 있던 때라 한 사람이 정말 귀한 때였다. 장승초는 2010년 12월만 해도 3학급에 전교생이 9명까지 줄어든 상황이었으니까.

 시골 학교 보호를 위해 면 소재지 거점학교는 한 학년 학생이 한 사람만 있어도 학급을 없애지 않는 정책이 있는데 장승초는 거점학교가 아니었다. 그래서 2011년에 6학급이 되려면 한 학년마다 6명 이상은 되어야 6학급이 되는 처지였다. 그런데 두 아이가 전학을 온다고 하니 더없이 반가웠다. 6학년이 되는 아이는 형 오지훈, 2학년이 되는 아이는 동생 오지헌이었다.

 
 ■ 담임이 되다

 2011년 3월부터 전주에서 버스를 타고 장승초를 다녔다. 전주에서 장승초에 오는데 30여 분 정도 버스를 타고 왔다. 집안 형편은 조금 어려운 편이었지만 표정은 늘 밝았다. 다른 아이들이 먼저 건들거나 함부로 해도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2012년 1월쯤,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지헌이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어서 안 그래도 어려운 가정 형편에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전주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은 아이마다 일정한 버스비를 내고 타는데 버스비를 내기가 어려운 형편이어서 여동생들은 집에서 가까운 전주에 있는 학교를 보냈다. 집도 장승초와 조금 가까웠던 곳에서 좀 더 먼 곳으로 이사했다. 이사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어디로 이사갔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5년 지헌이가 6학년 되던 해, 드디어 내가 담임이 되었다.

 
 ■ 가정 방문을 갔던 날

 새 학년 초 3월 말이 되면 장승초는 가정 방문을 한다. 대체로 선생과 부모들 관계가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 이해하고, 더 소통하려는 노력이다. 가정 방문 안내장을 보내고 지헌이를 불렀다.

 “지헌아, 새로 이사 간 집 어디지?”

 “효자동요.”

 “효자동? 그렇게 먼 데로 갔어? 몰랐네. 거기서 어떻게 다녀?”

 “자전거 타고요.”

 본래 자기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잘 이야기하지 않는 진중한 아이였지만 그렇게 먼 곳인지 알지 못했다. 집에서 학교 버스 타는 곳까지 10km 정도 되는 거리로 40분 정도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자전거 타고 효자동에서 인후동 버스 타는 곳까지 온다고?”

 “야, 지헌아. 거기서 어떻게 다니냐.”

 대부분 편하게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차가 와서 다니는 아이들 처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4학년 때부터 그렇게 다녔다고 했다. 더군다나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다니던 아이였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어떻게 다녀?”

 “쪼금 오면 그냥 자전거 타고 다녀요.”

 “많이 오면?”

 “버스 타고 와요.”하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가정 방문을 갔던 날, 지헌이 엄마와 한참을 앉아 이야기 나누고 나오는데 정말 이렇게 먼 곳에서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을 지헌이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나왔다.

 
 ■ 목수를 꿈꾸던 아이

 지헌이 꿈은 목수였다. 꿈이 무어냐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늘 “전 목수 될래요.”하고 말했다. 특히, 금요일마다 실과 재구성으로 목공, 서각, 꽃누르미, 제과제빵, 바느질을 했는데 지헌이는 늘 목공을 했다. 손에 장갑을 끼고 나무 다루는 모습이 제법 멋져 보였다. 손재주도 좋은 편이어서 목공 시간에 만든 책꽃이나 필통, 생활 도구를 잘 만들었다. 목공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질이 보여서 충분히 잘할 것이라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꿈을 찾아서 가기 쉽지 않은데 지헌이는 의지력도 강했다.

 6월이 되고 날이 점점 더워졌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도 더운지 나무 그늘을 찾았다. 그런데 나무 그늘에 앉을 의자가 마땅치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땅바닥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그냥 서 있거나 했다. 그런데 지헌이가 목공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서 만들기로 했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서 목공실을 들락거리면서 뚝딱거리더니 두 주 정도 지났을까. 나무 그늘에 의자가 자리 잡았다.

 “이거 지헌이 형이 만든 거래.”

 아이들도, 보는 사람들도 지헌이를 칭찬했다. 그런 생각으로 의자를 만든 마음도 귀하고, 의자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운 목공 선생님도 참 고마웠다.
 

 ■ 멋진 청년이 된 지헌이

 벌써 지헌이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이 되었다. 목수의 꿈과는 조금 다르지만 농수산대학 2학년을 다니며 멋진 농부의 삶을 꿈꾸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모여라~ 장승!’(한 해에 한 번 졸업생과 졸업생 학부모, 재학생, 재학생 학부모가 모이는 행사)에 친구와 함께 운전을 하고 왔다. 모두 “와~ 지헌이 정말 멋지다.”를 연발했다. 자신의 꿈을 잘 가꾸면 성장한 모습도 그렇고, 그냥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는 아주 바르고 멋있는 청년이 되었다.

 출산율은 아주 낮고 작은 학교는 더없이 힘든 형편이다. 전교생이 30명도 되지 않는 학교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작은 학교가 가진 또렷한 장점을 생각해 보니 아이들 한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고, 곁에서 좀 더 관심 두는 어른이 좀 더 곁에 있다. 또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해 주는 어른들도 제법 된다. 작은 학교가 어려운 요즘, 지헌이가 생각나고 멋진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일호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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