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55> 차의 길 58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55> 차의 길 58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4.01.0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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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겨울 차밭

  새해가 밝았으니 힘찬 계획과 원하는 바를 누구나 마음속에 새길 것이다. 매년 품는 소망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닐듯하지만 기세(氣勢)는 사람마다 다를성싶다. 젊은 날의 기세와 세월의 풍파를 겪은 이의 기세는 분명 차이가 있어 세상의 맛도 그만큼 다를 법하다.

  선인들은 어떻게 세상의 맛을 즐겼는지, 조선 중기의 문장가인 이수광(1563~1628)의 차와 관련된 다시(茶詩) 중에 「즉흥시, 즉사(卽事)」를 보면,
 

  마음속에서 명리(名利)의 관문을 꿰뚫고 나니
  만사를 잊어버린 채 세상의 맛이 한가롭네.
  손님이 찾아와 차를 마시는 중에 말 한마디 없이
  발을 걷고 하루 종일 푸른 산만 쳐다 보네.
 

  명예와 이익을 버리니 세상의 맛이 한가롭고, 벗이 찾아와 차를 나누며 푸른 산만을 말없이 쳐다봐도 마음이 통한다는 시이다. 따뜻한 봄날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벗과 함께 먼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그림 같은 시이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니 말에서 그 마음을 알 수 있듯, 마음을 알면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배어있다.

  그는 명문 가문의 외아들로 20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40년이 넘게 관직에 있었다. 주로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을 거쳤으며 이조판서까지 이른다. 광해군의 폭정으로 잠시 조정을 떠나있었으나 인조반정 후 다시 관직 생활을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관직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1614년에 편찬하였다.

  옷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병약했으나 몸가짐은 항상 단정하고 엄숙했다. 벼슬을 제수받으면 사양하는 등 벼슬을 탐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관직에 있는 동안 여러 변란을 겪었으나 출처와 언행에 조금도 흠결이 없어 모두가 칭찬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담박한 생활을 한듯하다. 아래 시는 그가 말년에 쓴 「우연히 쓰다, 우서(偶書)」라는 내용이다.
 

  젊을 땐 도를 추구함에 갈래가 많아 겁이 나고
  노년 들어 경전에서 조금 엿볼 수 있었네.
  생각이 동하려 할 땐 맹렬히 살펴야 하고
  의리상 해야 할 대목엔 주저하지 말아야 하네.
  책 속의 스승과 벗은 정말 즐길 만하고
  마음 닦는 공부 과정이야 자신만 안다네.
  만사는 소장의 이치를 가만히 살펴야 하니
  출처에 대해 복희씨에게 물을 것 없다네.
 

  젊은 시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흔들렸던 자신과 노년에 들어서야 경전을 통해 이치를 조금이라도 깨닫게 됨을 쓴 구절이다. 생각은 깊게 하고, 의리를 행함에 있어 주저하지 말고, 책과 벗을 가까이함을 즐거워하며, 마음을 닦는 공부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길로 보았다. 자신의 공부가 노년에야 경전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추구했던 젊은 날의 관직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또한 이수광은 평상시 몸이 병약해 차를 곁에 두고 마셨던 것 같다. 그의 다시(茶詩)에 나타난 차는 목마르면 마시는 일상의 음료이며 차와 약으로 몸을 돌보기 위함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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