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다정하고 쓸쓸하게 말하는 서정주의자
강연호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다정하고 쓸쓸하게 말하는 서정주의자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4.01.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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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생 슬픔을 타고난 시인이 있다. 지독한 외로움에 허방을 짚으며 청춘의 한 시절을 건너온 시인은 11년 만에 세상에 내미는 다섯 번째 시집에서 한층 더 깊어진 목소리로 노래한다. 번잡한 세상에서 몇 걸음 물러나 스스로를 소외시킨 것처럼 보이는 강연호 시의 주체는 한층 더 깊어진 외로움과 쓸쓸함을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시인의일요일·1만2,000원)’은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우려낸 듯한 정서를 담아낸다. 중년을 건너가는 삶이 거느린 비루한 삶의 풍경과 마음의 얼룩을 첨예한 보석의 언어로 펼쳐내고 있다. 시 ‘외로움을 잃어버렸죠’에는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절절히 새겨져 공감을 산다. “가야 하는 상갓집을 다녀오는 길”에 “보란 듯이 서로 싸우는 유족들을 만나고” 와도 “남의 집안 문제는 관여할 바가 아니어서/ 다들 묵묵히 문상을 하고 조의봉투를 내밀고/육개장을 먹고 돌아들” 가는 쓸쓸한 일상을 사는 모습처럼 말이다.

 시인은 일상의 삶이 품은 슬픈 비애를 가만히 추적하며 슬픔과 허무의 맥을 짚어나가는 서정적인 체험을 독자에게 선사하며,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파동을 일으킨다. 서정의 연금술사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다른 빛깔들로 자기 시 속에 촘촘히 수놓는다. 그가 서정주의자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시인의 시선은 이따금 밖을 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안을 향해 열려 있기를 꿈꾼다. 삶의 쓸쓸함에 대해, 고요에 대해, 우리를 글썽거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가만가만 중얼거린다. 이전보다 훨씬 두터워진 사유를 통해 느릿느릿 그려낸 세상은 쓸쓸하고 서럽지만, 그의 시들은 따뜻하고 감미롭다. 고요하고 섬세한 가운데 이전엔 쓸쓸하고 다정하게 말했으나 이제 다정하고 쓸쓸하게 건네는 시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봄인가/ 잠깐 나왔다가/ 미처 들어가지 못한/ 꽃눈이 피어/ 꽃이 되는 꽃”이라며, “내가 못 살아/ 내가 왜 못 살아/ 미련해서 미련을 못 버리는/ 갈증이 꽃을 피운다”고 노래한 ‘봄꽃의 선후’에선 홀로된 시간이 더없이 편안한 너와 나의 모습이 있다.

 강 시인은 199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비단길’,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기억의 못갖춘마디’등이 있다.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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