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부장님들께
X세대 부장님들께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4.01.0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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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긴 머리, 긴 치마를 입은 난 너를 상상하고 있었지만/ 짧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가 너의 첫인상이었어.” “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 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 거야.” 읽는 순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X세대입니다. 정답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죠? 90년대 초반 발표된 김건모의 <첫인상>, 015B의 <신인류의 사랑>입니다.

선배님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20여년전 동아리방 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왕가위 영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던 당신들이 생각납니다. 02학번 새내기의 눈에 90년대 학번인 당신들은 ‘헌내기’로 비춰졌지만, 은근 멋있기도 했습니다. 학생 신분이었던 우리들에게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하여 맥주 한잔을 사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당신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밀레니엄 학번인 우리는 동아리방 청소를 하느라 먼지에 켜켜이 쌓인 <말>지 수 십 권을 함부로 버리고 말았었지요. 오랜만에 학교에 방문한 ‘86’ 선배들은 <말>지의 시대정신을 간과한 우리의 실책을 채근하였고, 우리는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옆에 있던 X세대 선배님 하나가 말했지요. “괜찮아~ 그런데 <키노>는 버리지 마~” 그럼요. <키노>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도지침’은 몰라도 정성일과 왕가위는 좋아했거든요.

선배님들을 표상하는 아이콘은 무엇이 있을까요. 배꼽티(요즘은 크롭티로 불린다고 하더군요), 힙합바지, 너바나, 시티팝, 서태지, 삐삐, 무라카미 하루키, 에반게리온, X-japan, 슬램덩크. 여름방학때 ‘86’선배들이 ‘농활’을 갔다면 당신들은 해외배낭여행을 다녀왔겠군요. 당신들의 시대는 NLPDR, 사회구성체 논쟁의 뜨거웠던 시대를 지나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김일성이 죽은 뒤 만개하였지요. ‘한총련 연대 사태’는 흘러간 옛이야기의 에필로그였습니다. 대통령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아닌 김영삼·김대중이였고요. IMF의 터널을 지나 묵시적 세기말에 대학을 졸업했지요. 어떤 의미에선 앞선 세대와 뒷세대들 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세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사가들이 좋아하는 세대론을 이야기 하려고 선배님들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은 세대, 성별, 지역, 직업 등등으로 나누고 나누어서 서로 혐오하는 비정상적인 시대이니까요. 단지 90년대 학번, ‘X세대’라는 말로 당신들이 존중했던 개성을 퉁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세대담론은 매력적입니다. 마치 90년대 혈액형 심리학이, 현재는 MBTI가 유행하듯 사람들은 타인을 판단할 때 집단으로 묶어 사고의 편의를 즐기는 성향을 가지거든요. 그것에 대해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면 당신들이 존중했던 문화현상을 무시하는 것이니까요.

반항적인 젊은 세대에서 이제 당신들은 4,50대의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사회에선 ‘부장님’으로 호명됩니다. 파격적이고 탈권위적이며 개인주의적인 ‘MZ’ 평사원들의 모습에서 당신들의 지난날이 생각나진 않던가요. 지금의 MZ세대는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당신들의 문화를 동경한다고 합니다.

두 세대는 얼핏 닮아 보이기도 합니다. 파편화되어 각자도생하는 세대와 개성과 탈권위를 추구했던 선배님들을 비교하는 것이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요. 국민의힘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수락 연설문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를 인용해서 화제라고 하더군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는 그대’가 될지, ‘환상 속의 그대’가 될지 ‘부장님’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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