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대 논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대 논란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3.12.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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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겠다며 지난 6월 일방적인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또다시 12월15일부터 전국 규모의 시범사업을 확대 시행해 이 문제가 보건의료계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 ‘원격진료’라 불리던 ‘비대면 진료’는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 또는 화상을 통해 상담 후 약을 처방하는 진료 방식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해 진료해야 하기 때문에 현행법상 불법 행위로 간주된다.

코로나19라는 비상 생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비대면 진료를 보건당국은 코로나가 진정되었음에도 올해 6월부터 공식적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으로 실시하였다.

그리고 다시 12월15일부터 대폭 확대된 방향으로 역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비대면 진료는 여야 모두 오랫동안 추진해 온 정책이지만 의료계, 약업계 모두 큰 우려를 나타내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다만 지난 2020년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비대면 진료가 실시되면서 이러한 기류에 다소 변화가 생겨 지난 2022년 의사협회는 ‘의료사고 및 책임, 적정 수가 보장, 1차 의료기관 중심, 회원의 권리 보장’을 대원칙으로 ‘의협 주도로 비대면 진료에 대한 연구 및 시범사업’을 검토하고 정부와 협의할 것을 의결했었다.

그러나 협의와 공동 연구를 제안한 의협의 의견을 무시하고 보건복지부는 일방적으로 지난 6월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나 내용은 ‘제한적 초진 허용’, ‘재진 중심’이라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추진되었다. 그럼에도 시범사업 시행 이후 의료계의 준비되지 않은 정책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넉 달째를 맞았던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맞아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와 함께 실시한 ‘비대면 진료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의사 69명, 약사 427명)’에 따르면, 현재 시행 중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비대면 진료 제도 도입 본래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의사는 19%, 약사는 8%에 불과했다. 본래 목적과 현 시범사업이 왜 부합하지 않는지를 의사들은 ‘보건의료의 안전성보다 편리성 추구’ 65%, ‘대상 환자와 대상 질환 범위가 부적절’ 58%라고 답했다. 약사들은 ‘민간플랫폼의 사적 이익을 우선하는 보건의료의 영리화’ 71%, ‘고위험 비급여 의약품의 오남용 처방’ 69%, ‘보건의료의 안전성보다 편리성 추구’ 61%, ‘민간플랫폼 폐해 및 복지부의 관리·감독 부재’ 56%를 주요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약 5개월 동안 시범사업을 운영한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의 시행 범위를 더욱 확대한 개편안을 강행하고 나서 보건의료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확대 개편안의 주요 골자는 비대면 진료의 허용 범위를 대폭하고 초·재진 구분 자체를 하지 않고 6개월 이내 진료 기록이 있는 의료기관이라면 급성·만성 질환을 구분하지 않고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공휴일, 주말, 평일 오후 6시 이후부터 오전 9시까지는 별다른 제한 없이 비대면 초진을 받을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하면서 사상 최초로 24시간 비대면 진료까지 허용하게 됐다. 이런 갑작스런 비대면 진료의 확대에 대해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는 높다.

문진·시진·타진·촉진 등을 통해 환자의 용태를 듣고 관찰하여 증상 및 병명을 규명 판단하는 대면 진료와 달리 비대면 진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더욱이 재진도 아닌 초진 환자에 대한 무분별한 처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 최고의 의료 접근성을 갖고 있어 비대면 진료를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비대면 진료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다른 문제점은 비대면 진료 민간 플랫폼의 사적 이익과 폐해에 대한 우려이다. 비대면 진료는 그 특성상 모바일 앱 플랫폼(닥터 ○우, 나○의 닥터 등)등을 통한 진료가 주를 이루면서 공공을 담당하는 의료에 지나치게 민간 기업의 의존도가 커지면 결국 안정성보다는 편의성과 수익성을 따지게 되고 이는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계기가 되고 또한 의료비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배달앱이나 카카○T 등 몇몇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비용이 상승하고 폐해가 나타나듯이 의료라는 공공분야의 주도권이 민간으로 넘어가 결국 의료민영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바로 이 부분이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아직 부족하지만 왜 현 정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조차 수렴하지 않고 향후 의료전달체계에 중요 근간이 될 정책을 지나치게 빠르게 밀어붙이는 말할 수 없는 이면의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지 의심받는 지점이다.

발달된 IT, 통신기술을 통해 의료가 좀 더 편리하고 쉽게 접근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는 100명의 편리성보다 단 1명의 환자도 놓치지 않는 안정성이 필요한 분야이다.

국민 보건건강의 문제는 속도전이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라 생각된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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