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전북의 과거와 현재, 미래
전주 전북의 과거와 현재, 미래
  • 박대길 문학박사
  • 승인 2023.12.2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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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길 문학박사

 얼마 전 필자는 학술대회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발표문을 받아 본 후 찬찬히 살펴보면서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는데, ‘이거다’라는 뚜렷한 실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문득, 광주를 방문한 유명 정치인의 동정을 보도하는 방송과 언론이 ‘호남을 방문한 ○○○는 …’라는 뉴스가 떠올랐다. ‘광주를 방문했는데, 왜 싸잡아 호남이라고 하지.’라는 의문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것과 겹친 것이다.

 필자의 토론 대상이 된 논문의 제목이 그러하였다. 「전라도 천도교인의 독립선언서 배포와 독립 만세운동 전개(1919~1920)」인데, 막상 내용을 읽어 보니, 적어도 90% 이상은 전라북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0% 정도가 지금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로 각각 독립된 행정 구역이 된 전라남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더욱이 제주도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오늘날 전남·광주와 제주도를 포괄하는 전라도라는 지명을 사용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전라도는 1018년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강남도(江南道)와 나주를 중심으로 하는 해양도(海陽道)를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통폐합하면서 전주의 ‘全’과 나주의 ‘羅’를 취해서 만들어진 행정지명이다.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친 전라도는 1896년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까지 876년 동안 존속하였다. 이 시기 전라도의 감영(監營)은 전주에 있었다. 최근 전주시가 내세우는 ‘전라도의 수도 전주’가 이 시기를 가리킨다. 1896년 이후 전라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행정지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약방의 감초가 되어 회자(膾炙)된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2018년, 전라북도가 주도하고 전남과 광주가 참여한 ‘전라도 천년’이라는 이름의 기념행사와 더불어 편찬 내용에 논란이 일어나 배부하지 못하고 있는 『전라도 천년사』 편찬 작업을 추진하였다. 이때 전남과 광주보다 나주시가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전라북도가 주도하고 전남과 광주가 함께 한 『전라도 천년사』 편찬 사업에 제주도가 애당초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전라도라는 행정지명을 지금도 사용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광주를 방문해도, 전남을 방문해도, 전북을 방문해도 호남 또는 전라도를 방문했다고 한다. 1898년 전라남도 관찰사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북도 관찰사 이완용을 전라도 관찰사로 오인(誤認)하는 것처럼. 그런데 사용 빈도를 보면, 광주와 전남을 방문하였을 때, 유독 전라도를 더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작 제주도 방문에 대해서는 전라도 또는 호남이라 하지 않는다. 필자는 학술대회 토론장에서 이 점을 지적하였고, 발표자는 흔쾌히 수용하여 전라도를 전라북도로 수정하겠다고 하였다.

 필자는 1988년 조성만 열사 장례 때, 광주 망월동묘역[현 국립5?18민주묘지]을 늦은 시간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망월동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내게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필자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전주에서 왔다고 했더니, “아따, 동지 만났네. 반갑소.”하는 말에는 진한 울림이 있었다. 그때 망월동에서 만난 그 사람은, 전주에서 왔다는 말에, 왜 동지를 만났다며 반가워했는지, 지금도 이유는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 시절에는 그런 정서가 있었으니까.

 35년이 지난 지금, 광주와 전주는 동지적 관계인가.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선의의 경쟁 관계이고. 언제든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말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한때 전주가 전라도의 수부(首府)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의 전주와 전북을 지탱하는 근간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는 온전히 전주 전북인 하기에 달렸다. 그것은 오로지 전주 전북인의 몫이다.

 박대길 <문학박사/전북민주주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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