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우여 들리는가
학우여 들리는가
  • 염영선 전북도의회 대변인
  • 승인 2023.12.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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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영선 전북도의회 대변인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나. 전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장안의 화제인 ‘서울의 봄’ 엔딩곡 ‘전선을 간다’ 군가다. 전율했다. 필자와 함께 영화를 관람한 친구들은 관람석을 떠나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다만 그것이 군가인지 데모송인지 헷갈렸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무력을 동원해 불법적으로 군 지휘권을 장악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개봉 33일 만에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전두광 역 황정민과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이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이태신 역 정우성의 명연기가 있어 가능했다. 영화의 흥행은 다분히 배우의 몫이다.

 하지만 이 엄동설한에 난데없는 ‘서울의 봄’ 인기는 자연의 봄보다는 역사의 봄을 기다리는 시대정신의 표출이 아닐까?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18년 군부독재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새로운 시대 도래를 기대하는 은유적 시사용어였다. 하지만 전두환 일당의 12.12 군사반란으로 대한민국은 혹독한 겨울 공화국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총칼로 권력은 장악할 수 있어도 민심마저 이길 순 없었다.

 저항했다. 광주에서 수백 명이 피를 흘려야 했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소위 586세대들은 최루탄이 공기였다. 도서관보다 교문에서 친구인 전경들과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다. 연인과 극장가 대신 시장바닥에 유인물을 뿌리며 도망쳐다녀야 했으며 유치장과 감옥을 오가며 꽁보리밥을 삼켜야 했다. “지금은 일본 전체가 비가 새고 있소, 우리 집 수리 따위를 살필 겨를이 없소.” 메이지 유신 지도자의 한사람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일성처럼 출세보다 조국의 현실과 앞날을 우선했던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승리했다. ‘서울의 봄’ 관람을 자식들에게 떳떳하게 권장할 수 있는 것은 87 민주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는 데 동참했던 부모세대의 자부심 아니었던가. 억울하다. 어떻게 찾은 조국이고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인가. 피땀흘린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인사 탄압에 수구와 방관을 자처하던 자들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총칼이 아닌 합법을 가장한 武法(무법)으로 대한민국을 거머쥐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검찰독재의 암울한 겨울공화국의 연속이다. 군부독재보다 더 야비하고 간악하다. 정적제거를 위해 야당 대표를 376건 압수 수색했고 수백 명을 조사했다. 그런데 정작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은 모르쇠다. 이제 그 검찰에게 후계 자리까지 물려줄 양 검찰통치 연장을 꾀하려 한다.

 분노한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우겠다.” 후계자라고 일컬어지는 분의 비상대책위원장 수락 연설이다. 지나가는 소가 웃는다. 이는 당신들은 출세를 위해 도서관에 파묻혀 있을 때 필자를 비롯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분들에 대한 모독이자 선전포고다.

 ‘학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학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서울의 봄 엔딩곡은 반란군에 맞선 군가이자 이 땅의 민주회복을 위한 장렬한 진군가 처럼 들렸다.

 염영선<전북도의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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