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봉사
게으름과 봉사
  • 서정환 수필가
  • 승인 2023.12.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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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우리는 앞에 나서기를 주저한다. 아니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길 꺼려한다. 명쾌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어물쩍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특히 선거 때나 무엇을 결정할 일이 있을 때면 나타나는 고질병이 아닌가 싶다. 무슨 일에나 나서기를 싫어하고 누가 강권하면 그때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것.

이와 같은 일은 게으름, 나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최근 히스토리 채널에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나태, 행동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것에 대한 결론이다.

어쨌든 나태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조금은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지 않은가.

데니스 포드가 그의 책 ‘나태함의 죄’에 쓴 바에 의하면 “오늘날 3일 동안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합치면 히로시마 폭탄테러로 죽은 사람 수보다 더 많다고 한다. 매년 대학살로 살해된 사람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우리가 도울 수 있는 데도-굶어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도덕적 가치와 양심도 그들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고 역설한다. 나 또한 행동하지 않는 자 중 한 사람이다. 매일 내 일 처리에 바쁘고, 내게 닥친 골칫거리들을 해결하느라고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들에 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하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한 것이 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인가? 지나치게 조금 행동하는 것이 왜 도덕적 죄악이 될까? 그리고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고 마음이 불편한가?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문제가 널려 있다는 것도 그 불편함에 분명 한몫을 한다. 그중에서 우리는 코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만도 진이 빠진다.

가난한 이들을 먹이고, 환경을 보호하고, 노인들을 보살피는 문제에 관해 우리는 기꺼이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왜 우리는 행동하지 않는 걸까? 우리의 무관심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 것인가. 크랙 쉘리(Craig Shealy)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행동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요인은 성장과정, 개인적 가치관, 그리고 문화가 뒤섞여 형성된다고 말한다. 불행히도 서양문화는 도덕적 행동을 할 때 심각한 방해 작용을 한다. 광고판이며 텔레비전에서 매일같이 우리에게 “이걸 먹어요. 저걸 입어요, 이 차를 몰아요.”라고 메시지의 폭탄을 퍼부어대고, 심지어는 어떻게 불우이웃을 도와야 가장 그럴듯하고 생색이 나는지조차 가르치려 들고 있다.

“네 일은 제가 알아서”하는 사회에서 자란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가 우리에게 죄책감의 짐을 지우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성인군자인 척하거나 경건한 척하는 ‘선행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커녕 종종 짜증스럽고 역겨운 느낌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개인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각자 자기중심적인 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자신을 위해서-모두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선의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나서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강제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동기와 성취 욕구는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고 경제적, 물질적, 사회적 보상을 풍성하게 일구어냈다. 개인주의자들의 나라에서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가치는 자유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약한 자를 괴롭힐 수 있는 자유, 불이익을 회피할 수 있는 자유,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 자유, 동물을 학대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억압받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외면할 수 있는 자유 또한 개개인의 자유이다.

“사람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얻게 되는 법이다.”라는 통념 또한 우리의 게으른 무관심을 부채질한다. 우리는 호라지오 앨저(미국 동화작가 저서<명작의 숲>)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어려운 주위환경을 극복하고, 역경을 넘어서서 삶의 성공을 거머쥔 개인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항상 이런 식의 성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매일매일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바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의 아름다운 점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의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나도 자선행위를 하긴 한다. 하지만 늘 어딘지 모르게 내가 충분히 베풀지 않는 것 같고, 충분히 봉사하지 않는 것 같고, 충분히 개입하지 않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다. 당신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문제는 우리의 게으름인 듯하다. 내 생각이다.

서정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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