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시대’, 위협받는 청년의 삶과 정신 건강
‘고립의 시대’, 위협받는 청년의 삶과 정신 건강
  • 최낙관 독일 쾰른대 사회학 박사
  • 승인 2023.12.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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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관 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최낙관 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은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큰 경제적 성과를 거두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풍요 속에서 소외와 배제 그리고 더 큰 상대적 빈곤을 경험하는 저소득층이 확대되고 있다. 경제학자 케인즈(1883~1946)가 1930년대 수요가 따르지 않는 공급의 허상을 지적했던 ‘풍요 속의 빈곤’(Poverty in the Midst of Plenty)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실존적 삶과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 빈곤 등 문제의 총체적 복잡성에 기인한 온기 없는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는 사회병리적 외로움과 우울증을 동반하며 이제는 노인을 넘어 청년 고독사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병리적 현상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한 응전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외로움’을 긴급한(pressing)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외로움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특별히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사회적 고립의 고리를 제거하고 외로움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정부 통계를 인용하면, 작년 2022년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었고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이 2015년 289만 명에서 2021년 411만 명으로 무려 72%나 증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살률이다. 그간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의 자살률이 노년층뿐만 아니라 청년층에서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 희망의 아이콘인 청년들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 주거비, 생활비 등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눈물겨운 아르바이트 등 단기 근로 현장을 전전하지만, 사회초년생으로 대학 문을 나설 때 이미 빚쟁이로 전락하는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심각한 구직난은 그들에게 절망과 무기력을 안기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위기 상황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청년 자살이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서고 있다. 2017년 대비 2021년 4년 만에 자살률이 10대 51%, 20대 40%, 30대 11% 증가하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민정신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정신 건강정책 혁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혁신 방안의 핵심은 2027년까지 ‘마음 돌봄’ 체계를 구축하여 우울증 환자 100만 명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고 향후 10년 내 자살률을 50% 감축하여 OECD 자살률 1위 국가 오명을 벗는 것이다.

이제라도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외로움’에 대한 정책적 개입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더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치료’보다 ‘예방’에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으로 작금의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사회적 모순과 그로 인한 절망과 좌절을 근본부터 ‘새로 고침’할 수 있는 그래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사회변혁이 요구된다.

「자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Emile Durkheim: 1858~1917)은 아노미 상황, 즉 개인의 경제적 붕괴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 공감과 연대가 단절된 사회에서 자살이 증가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23년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외로움과 우울증 그리고 자살이 감염병이 되어 21세기 우리 사회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지 걱정과 우려가 교차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정신 건강정책 혁신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좀 더 혁신적인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만 한다.

최낙관 <독일 쾰른대 사회학 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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